9일 오후 서울 중구 롯데마트 서울역점 식품 코너. 농심, 오뚜기 등이 쏟아낸 라면 신제품이 높이 2m짜리 진열대마다 빽빽했다. 오뚜기가 지난달 말 출시한 '진짜쫄면'은 1245원이었고 '굴진짬뽕' 등 가격은 1370원이었다. 1개당 720원인 오뚜기의 대표 상품 '진라면'의 2배에 육박하는 가격이다. 주부 김모(32)씨는 "한 봉지 가격이 1500원 안팎이라 선뜻 사기는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또 다른 20대 주부는 "라면값을 올리지 않아 '착한 기업, 갓뚜기'라고 하던데 그건 사실이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갓뚜기'란 신(神)을 뜻하는 '갓(God)'과 오뚜기의 '뚜기'를 합성한 단어다. 오뚜기가 10년 가까이 라면값을 올리지 않아 물가 안정에 기여했다는 이유로 청와대에서 열린 문재인 대통령과 기업인 호프 미팅에 초청되면서 유행했던 표현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진라면' 같은 대표 상품 가격만 그대로 두고, 고가(高價)의 신제품을 내는 방법으로 사실상 가격 인상 효과를 보는 '꼼수 인상'을 한 것이다. 오뚜기뿐만 아니라 다른 라면 업체도 같은 수법을 사용하고 있다.
◇48개 신제품 평균 가격 1452원
본지가 작년부터 9일까지 출시된 농심·오뚜기·삼양식품·팔도 등 국내 라면 제조사 4곳의 신제품 48개를 조사한 결과, 1봉지당 평균 가격은 1452원이었다. 신라면·진라면·삼양라면·팔도비빔면 등 각 사 대표 제품의 평균 가격(805원)의 1.8배에 달했다. 1500원 넘는 고가 라면이 26개(54%)로 절반을 넘었다. 가장 비싼 제품은 농심이 지난해 5월 내놓은 2500원짜리 '카레라이스 쌀면'이었다. 이 기간에 출시된 1000원 미만의 라면은 '팔도비빔면 봄한정판'(860원)과 '삼양라면 매운맛'(810원) 딱 2개였다.
신제품 평균 가격이 가장 높은 업체는 업계 1위 농심이었다. 이 기간에 출시한 신제품 16종의 평균 가격은 1619원으로 기존 제품인 '신라면'(830원)의 약 두 배였다. 가장 저렴한 제품도 1200원이었다. 이어 신제품 평균 가격은 오뚜기(1474원), 삼양식품(1309원), 팔도(1243원) 순으로 높았다.
라면업체들은 한결같이 "연구 개발비가 많이 들고, 새로운 재료를 넣기 때문에 원가가 올랐다"는 입장이다. 농심 측은 "맛에 대한 소비자의 눈높이가 높아져 제품을 프리미엄화하는 과정에서 가격이 상승한 것"이라며 "가격대가 1000원 이하에 묶여 있으면 그 정도 제품밖에 만들 수 없다"고 주장했다. 삼양식품 측은 "원료의 맛을 충분히 느낄 수 있도록 액상화 수프를 넣다 보니 가격이 올랐다"고 주장했다.
◇프리미엄 빌미로 가격 올리는 '꼼수'
그러나 전문가들은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보고 있다. 면의 주원료인 밀가루(소맥)와 면을 튀기는 데 쓰는 팜유 가격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소맥 수입 가격은 2011년 t당 260달러였지만 지난해 162달러로 낮아졌다. 팜유 수입 가격도 같은 기간 1139달러에서 689달러로 인하됐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물가감시센터에 따르면, 농심은 지난 2015년 '맛짬뽕'을 출시하면서 가격을 당시 '신라면' 630원보다 98% 오른 1245원으로 책정했다. 그러나 센터가 추정한 원가는 약 73원(20%) 더 많이 드는 데 그쳤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라면업체들이 신제품 출시를 통해 가격을 올리는 건 '꼼수'에 불과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서용구 숙명여대 교수(경영학)는 "신제품은 가격을 책정하기 나름이기 때문에 눈치 안 보고 고가로 출시하는 것"이라고 했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경제학)는 "라면 제조사 4곳이 시장을 지배하는 독과점적 시장에서 시장 원리가 투명하게 운영되지 않으면 결국 소비자만 피해를 본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