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8.04.11 03:07

청와대 게시판에 21만명 요구

삼성증권 배당 착오 사태로 드러난 '허술한 주식 매매 시스템'에 대한 개인 투자자들의 불만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비난의 화살은 공매도(空賣渡) 제도를 정조준하고 있다. 공매도란 주가(株價)가 내려갈 것으로 예상하고 남의 주식을 빌려서 판 뒤 나중에 되갚아 차익을 남기는 투자 기법이다. 개인 투자자들은 이번 삼성증권 사태가 있지도 않은 주식이 전산 입력만으로 만들어졌고, 실제로 시장에서 팔렸다는 점이 '무차입(無借入) 공매도' 형태와 유사하다며 공매도 제도 철폐를 주장하고 있다. 무차입 공매도는 주식을 '선(先)대여, 후(後)매도' 하는 차입 공매도와 달리 '선매도, 후대여' 하는 방식이다. 주식시장 안정성을 해친다는 이유로 우리나라를 비롯한 대부분의 국가에서 금지하고 있다.

공매도 어떻게 이뤄지나 외
사건이 일어난 지난 6일 한 네티즌이 청와대 국민 청원 게시판에 "삼성증권 시스템을 규제하고, 공매도를 금지해달라"고 요구한 글은 5일 만에 21만여 명의 서명을 이끌어내며 폭발적인 호응을 얻고 있다. 글이 올라오고 30일 안에 20만명 이상이 서명할 경우 정부는 이에 대한 입장을 발표해야 한다. 주식 관련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기관이나 증권사들이 주식이 있지도 않으면서 공매도 치던 것이 딱 걸렸다" 등 공매도 제도에 대한 강한 불신을 드러내는 글이 빗발치고 있다.

삼성증권 사태로 공매도 불만 폭발

엄밀히 말하면 삼성증권 사태를 무차입 공매도로 볼 수는 없다. 유령 주식이지만 계좌에 주식이 입고됐고, 업틱룰(up-tick rule·공매도로 주식을 팔 때 시장가보다 낮은 가격을 부를 수 없게 한 제도)을 따르지 않고 시장가보다 낮은 가격에 주식 매도가 이뤄졌다는 점에서 '오류 거래(Error Trade)'이지 공매도는 아니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삼성증권 사태와 공매도 비교
하지만 개인 투자자들은 이번 삼성증권 사태가 공매도의 요건을 얼마나 제대로 갖추고 있었는지보다는 유통 가능한 가상(假像)의 주식을 증권사 마음대로 찍어낼 수 있었다는 것을 더 주목하고 있다. 본인 소유가 아닌 막대한 양의 주식을 외부에서 획득한 뒤, 시장에 풀어 주가를 끌어내리게 한 과정이 공매도의 폐해를 고스란히 보여준다는 것이다. 평소 공매도에 따른 주가 하락으로 손실을 본 개인 투자자가 많다는 점도 이번 삼성증권 사태가 '공매도 폐지 요구'로 비화하게 된 주요인 중 하나다. 공매도를 주도하는 헤지펀드 등 외국계 기관들은 막대한 매도 물량을 시장에 쏟아내면서 주가가 우상향할 수 없게끔 찍어 누르기 때문에 개인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손절매(손해를 감수하고 주식을 파는 것)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다수 개인 투자자들의 주장이다. 30년 넘게 주식 투자를 해 온 이모(65)씨는 "주식 투자를 오래 한 사람이라면 막대한 공매도 물량 때문에 돈을 잃고 피눈물 흘려본 경험이 있을 것"이라며 "개인 투자자는 주가가 오르는 데만 베팅할 수 있고, 외국인과 기관은 양방향 다 가능하다는 점에서 주식시장은 명백히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올해 유가증권시장에서 개인 공매도 비중은 0.24%(거래대금 비중)에 불과하다. 외국인이 69.4%, 기관이 30.4%를 차지한다.

◇주식 시스템 근간을 뒤흔들 수도

시장에서는 이번 사태로 인해 주식시장 시스템 전반에 대한 신뢰가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다는 점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그간 공매도로 피해를 봤다고 주장하는 개인 투자자들 중에는 '무차입 공매도'의 존재 여부에 의심을 품는 사람이 많았다. 관계 기관과 금융 당국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입장을 고수해왔지만, 이번 사태로 인해 주식도 없으면서 전산상으로만 존재하는 주식을 찍어내 매도하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이 증명됐다. 소셜미디어 등 인터넷상에는 증권사들이 그동안 들키지 않을 정도의 가상 주식을 찍어내며 시장을 교란시켰을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하는 투자자가 많다. 주식 매매가 일어나고 2거래일 뒤, 돈과 주식 간의 교환(결제)이 이뤄지기 때문에 그사이에 비어 있는 주식을 메워놓으면 들키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현행 증권 거래 시스템을 들여다보면 '합리적 의심'이라고 할 만하다. 실물 주식을 보관하며 주식 거래 중개를 맡고 있는 한국예탁결제원 관계자는 "특정 업체의 주식 잔량을 시장에 풀린 주식 물량과 매일 대조하는 업무는 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결제일 전까지만 문제가 일어나지 않게 주식을 마련해놓으면 그전에 설령 주식도 없이 매도했어도 금융 당국이 감사를 나와서 해당 사항을 들여다보지 않는 한 적발될 가능성은 사실상 작다"고 말했다.

공매도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지만, 시장 전문가들은 공매도가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고 악재를 선반영하는 등의 순기능이 분명한 만큼 제도 폐지는 시장 참여자 모두에게 해(害)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홍춘욱 키움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좋은 정보든 나쁜 정보든 주가에 빨리 반영돼야 하는데, 공매도가 없으면 나쁜 정보는 제때 반영되지 않고 그 피해는 결국 다른 투자자에게 전가된다"며 "공매도를 폐지하기보다는 오히려 개인도 공매도에 참여 할 수 있게 투명한 정보 공개가 이뤄지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공매도(空賣渡)

특정 주식 종목의 주가가 떨어질 것으로 예상하는 투자자가 증권사 등에서 해당 종목의 주식을 빌려서 판 뒤, 나중에 주가가 떨어지면 다시 사들여 주식을 갚는 식으로 차익을 남기는 투자기법. 최근 삼성증권 직원들이 계좌에 잘못 들어온 '유령 주식'을 시장에 판 행위가 '없는 주식을 팔았다'는 측면에서 공매도와 비슷하다는 이유로 공매도 철폐를 요구하는 투자자들의 청원이 빗발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