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는 80년대 추억의 복고
스필버그 영화선 당시 노래 흐르고 일본 전역엔 디스코 클럽 부활
국내에도 오락실·롤러장 생겨
8일 국내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른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레디 플레이어 원'엔 1980년대 대중문화가 대거 등장한다. 주인공 퍼시발은 80년대 전성기를 누린 듀란듀란을 좋아하고 아하의 '테이크 온 미'(1984), 반 헤일런의 '점프'(1983) 같은 80년대 히트곡이 배경음악으로 흐른다. 스탠리 큐브릭의 '샤이닝'(1980)을 오마주하고, '백 투 더 퓨처'(1985) '터미네이터'(1984) '스타워즈'시리즈(1977~1983) 등이 영화에 인용된다. 지난 주말 미국 박스오피스 1억달러, 세계 박스오피스 4억달러를 돌파했다.
전 세계가 80년대의 추억을 불러내고 있다. 영화, 패션, 음악, 오락 등 대중문화 전반에서 80년대 콘텐츠를 쏟아내고 있다. 한국에서도 드라마 '응답하라 1988' 이후 80년대 복고 열기가 이어지고 있다.
◇'백 투 더 퓨처'와 '아하'의 부활
지난해 북미 역대 공포영화 흥행 1위에 오른 '잇'(It)과 넷플릭스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끈 드라마 '기묘한 이야기'는 모두 80년대 미국이 배경이다. 두 작품의 이야기와 캐릭터는 'ET'(1982) '괴물'(1982) '구니스'(1986)를 절묘하게 섞어 만들었다. 패션잡지 보그와 엘르, 하퍼스바자 미국판도 지난 2월 뉴욕 패션위크가 끝나자마자 일제히 올해의 트렌드를 '80년대 복고'라고 전했다.
아시아도 예외가 아니다. 뉴욕타임스(NYT)는 지난 6일 "일본의 버블 시대를 추억하는 기성세대와 그 시절을 선망하는 젊은이들이 80년대 유행을 불러오고 있다"고 보도했다. NYT가 예로 든 것이 유튜브에서 5000만 조회수를 기록한 오사카 '도미오카 댄스 클럽'(TDC)이다. 도미오카 고등학교 여학생들이 어깨에 패드를 넣은 재킷을 입고 앞머리를 한껏 부풀린 채 유로댄스 음악에 맞춰 일사불란하게 춤추며 80년대 젊은이들을 재현했다. 80년대 상징이었던 디스코 클럽도 일본 전역에 다시 생겨나고 있다.
한국에선 TDC를 따라 국내 개그우먼들이 결성한 '셀럽파이브'가 사랑받고 있다. 서울 용산엔 80년대 아케이드 게임기를 들여놓은 오락실과 '롤러장'이 들어섰고, 한 특급호텔에선 13일 80년대 나이트클럽과 디스코텍을 재현한 디너쇼를 기획했다.
◇장밋빛 미래가 없는 현실 때문
70년대가 석유 파동과 냉전의 시대였다면, 80년대는 '레이거노믹스'와 '대처리즘'으로 대변되는 신자유주의 시대였다. 일본은 2차대전 이후 최고의 경제 성장을 이뤄냈다. 공산국가들이 붕괴되면서 정치적 자유를 누렸고, 문화는 저항이 아닌 오락의 도구가 됐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 전쟁 이후 허리띠를 졸라매고 고생한 결실을 맛보기 시작했고, 88올림픽 특수에 힘입어 한국 경제 최초로 3년 연속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했다.
현재 우리 사회 주소비층이자 정치권력인 40~50대가 80년대 당시 10~20대를 보낸 세대란 점도 주목된다. 군부독재 등 정치적으로는 매우 암울했던 시절이지만 이들은 그 시절을 낭만적으로 회상한다. 함인희 이화여대 교수는 "자신들이 민주화를 이뤄내는 데 기여했다는 성취감 때문에 그 시절을 긍정적으로 추억하는 면이 있다"고 말했다.
80년대는 밀레니얼 세대(1980년대 초반~2000년대 초반 태어난 세대)에겐 동경의 대상이다. NYT는 80년대를 겪지 않은 10~20대가 그 시절을 동경하는 건 "장밋빛 미래가 없는 현실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도쿄 시내 한복판에서 디자이너 브랜드 드레스를 입고 리무진을 타며 80년대 버블을 체험하는 서비스를 이용한 한 20대 일본 여성은 NYT에 "이런 경험은 내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것"이라며 "나는 내 미래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