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8.04.10 23:39

영화 '7년의 밤' 원작자 정유정 "평생 생존 이야기만 쓸 것 같아"

지난 2일 소설가 정유정(52)은 만나자마자 "직접 쓴 '7년의 밤' 영화평"이라면서 A4 용지 다섯 장부터 건넸다. 글이 빼곡했다. "고백건대 나는 영화를 잘 모른다"는 문구가 눈에 띄었다. "워낙 거칠게 써서 어디 내놓을 순 없어요. 제 해석과 감상을 충분히 들려주려면 글로 설명하는 게 나을 것 같아서…."

지난달 말 개봉한 영화 '7년의 밤'(감독 추창민)은 기대보다 성적이 좋지 않다. 지난 8일까지 51만3000명이 봤다. 손익분기점이 250만명이다. 정 작가는 "작가 입장에선 여러모로 큰 자극이 된 창작물이었다"고 했다. "소설과 영화가 다르다고 화내는 분도 봤는데, 전 오히려 결말을 바꾼 게 맘에 들더라고요. 어떤 점에선 제 원작보다 강렬하고 단단하게 얘기를 매듭 지은 것 같아요."

정 작가는 유독 영화계가 편애하는 작가다. 2009년 쓴 '내 심장을 쏴라'는 2015년 같은 제목 영화로 나왔다. 2016년 나온 '종의 기원'도 출간되자마자 판권이 팔려 영화 제작을 앞두고 있다. 정 작가가 줄곧 "내 소설을 두고 '영화 같다'고 하는 게 싫다"고 했던 것을 떠올려보면 아이로니컬한 일이다. 정 작가도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제 이야기가 명징하고 또렷한 편이고 묘사할 땐 눈앞에 잡힐 듯 쓰는 걸 선호하다 보니, 영화 만드는 분 입장에선 제 소설이 작업하기에 편해 보일 수 있어요. 근데 막상 작업을 시작하면 제 소설이 시나리오로 각색하기엔 더 어려울 거예요. 들입다 소설 작법으로 썼으니까요(웃음)."

정유정 소설 주인공은 전부 남자였다. 선 굵은 이야기를 찾는 감독들은 그 점에 반색했지만 일부에선 "여성 호르몬 없는 작가"라고 말하기도 했다. 정 작가는 "억울했다"고 했다. "여자로서 하고 싶은 얘기가 너무 많았고 그래서 오히려 쉽게 시작할 엄두를 못 냈던 거예요. 울컥 터뜨리기부터 할까봐. 작가로서 객관적 거리감을 잃을까봐. 오랫동안 남몰래 여성 주인공을 통해 얘기하는 걸 꾸준히 훈련했어요. 이젠 (써도) 될 것 같고요." 새 소설도 그래서 불치병에 걸린 여성 침팬지 조련사 얘기다. "결국 또 생존이 주제냐"고 했더니 정 작가는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간호사로 일하던 시절에 당직 서는 응급실로 엄마가 갑자기 실려왔고 몇 년 뒤 그 병원 중환자실에서 세상을 떠났어요. 그 기억이 여전히 트라우마처럼 생생해요. 아직도 죽는 게 지독하게 무서워요. 살아남고 싶어요. 그래서 써요. 이 미친 세상에서 의미 있게 살아남고 싶어서…. 어쩌면 평생 생존에 대한 얘기만 쓰다 죽을지도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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