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흑인들의 거친 삶을 랩으로 포착하다

미국 래퍼 켄드릭 라마(31)가 힙합 뮤지션 최초로 미국 퓰리처상 음악 부문을 수상하면서 라마의 가사와 음악에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 언론 보도를 주로 시상하는 퓰리처상은 1943년부터 음악 부문에 상을 주고 있으며, 그간 수상자는 대개 클래식과 재즈 작곡·연주자였다. 2008년 포크 뮤지션 밥 딜런이 특별상을 받은 바 있다.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가장 좋아하는 힙합 뮤지션"으로 꼽기도 했던 라마는 갱스터 가문에서 태어나 10대 때 랩 앨범을 발표한 전형적인 '뒷골목 래퍼' 출신이다. 힙합은 흑인 밀집 지역 길거리에서 탄생한 음악으로, 누가 더 험하고 거친 삶을 살았는지를 가사로 써내는 것이 실력을 판단하는 주요 요소다. 심지어 몇 번 감옥을 갔다 왔는지, 총을 몇 발 맞았었는지 같은 것으로 경쟁하기도 한다.

1987년 라마가 캘리포니아 작은 도시에서 태어났을 때, 그의 아버지는 갱단의 일원이었고 집안도 갱단에 연계돼 있었다. 라마가 16세에 랩 믹스 테이프를 처음 발표했을 때 그 음악의 제목도 '최연소 검둥이 두목(Youngest Head Nigga in Charge)'이었다. 2011년 메이저 음반사에서 데뷔한 라마는 현재 최고 힙합 아티스트의 자리에 올랐다. 퓰리처상을 받은 그의 네 번째 앨범 '제기랄(Damn)'은 작년 발매한 뒤 지금까지 350만장 팔렸으며 지난 1월 제60회 그래미 시상식에서 '최우수 랩' 상을 받았다. 퓰리처상 위원회는 이 앨범이 "현대 아프리카계 미국인들 삶의 복잡성을 포착했다"고 평가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지난 2015년 인터뷰에서 라마의 노래를 가장 좋아한다고 말하고 이듬해 백악관으로 라마를 초청하기도 했다. 작년 오바마가 공개한 '2017년 가장 즐겨 들은 노래' 목록에도 라마의 '험블(Humble)'이 올랐다. 이 랩에는 온갖 욕설이 난무하는 가운데 "오바마가 방금 내게 문자 쳤어(Obama just paged me)"란 가사도 나온다.

라마의 퓰리처상 수상을 두고 미국 내 반응은 엇갈린다. 일각에서는 "수상이 너무 늦었다"고 할 만큼 찬사도 나왔다. 라마의 이번 앨범보다 2015년 앨범 '투 핌프 어 버터플라이(To Pimp a Butterfly)'가 문학성·예술성을 더 인정받았다는 것이다.

이 앨범 수록곡 '킹 쿤타'는 소설가 앨릭스 헤일리가 흑인 노예들의 투쟁사를 그린 소설 '뿌리'를 기반으로 한다. 미국 음악 매거진 '롤링스톤'은 이 앨범을 그해 최고의 음반으로 꼽았었다. 반면 "퓰리처상이 좀 더 신중했어야 했다"는 반응도 등장했다. 뉴욕타임스는 "라마의 앨범은 분명 가치 있지만 그 승리가 힙합보다는 스트리밍 서비스의 승리처럼 느껴진다"고 평했다.

"그래미가 뛰어넘지 못한 한계를 퓰리처가 깼다"는 평도 나왔다. 지난 1월 그래미 시상식에서 라마는 7개 부문, R&B 가수 브루노 마스가 8개 부문 후보에 올랐으나 브루노 마스가 주요 상을 싹쓸이하며 일방적인 승리를 거뒀다. 퓰리처상 관계자는 미국 '빌보드' 인터뷰에서 "퓰리처상 위원회가 힙합 영향을 받은 다른 앨범을 수상작으로 고려하고 있다가 라마의 앨범을 듣고 만장일치로 수상을 결정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