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이 2016년 말에 불거진 육류담보대출 사기 사건과 관련해, 오는 26일 동양생명 법인과 전·현직 임직원을 대상으로 관리 감독에 대한 책임을 물어 징계 수위를 정한다. 금융권에서는 금감원의 징계가 동양생명 주인인 중국의 안방보험과 보고펀드가 맞붙은 7000억원대 국제 소송의 핵심 변수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 결과가 안방보험과 보고펀드 소송을 맡고 있는 국제상업회의소(ICC) 산하 국제중재재판소(홍콩)의 판단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동양생명 매각 후 대출 사기 불거져
육류담보대출은 육류 유통업자가 쇠고기 등을 담보로 맡기고 금융회사에서 대출을 받는 구조다. 저금리 속에 연 8% 안팎의 수익률이 나와 제2금융권에서 주로 다뤘다. 그러나 2016년 말 육류담보대출 부실 사태가 터지면서 금융권에 수천억원대 피해를 안겼다. 검찰 수사 결과, 육류 유통업자 등 40여 명이 약 2년간 고기 값을 부풀려 담보로 맡기거나 담보를 이중으로 잡는 수법으로 동양생명 등 14개 금융회사에서 약 5800억원 규모의 대출을 받은 것이 드러났다. 동양생명 피해액만 3800억원이다.
문제는 이 사건이 안방보험이 동양생명을 인수한 후 1년여 만에 불거졌다는 점이다. 안방보험은 보고펀드가 동양생명 지분을 팔면서 육류담보대출의 위험에 대해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작년 6월 국제중재재판소에 7000억원대 손해배상 청구 소송도 냈다. 보고펀드는 대출 상황을 충분히 설명했고, 당시 보험에도 가입하는 등 만일의 사태에도 대비를 해놨다고 반박하며 첨예하게 맞서고 있다.
◇ "사기 피해자에게 징계 부당" vs "관리 책임져야"
이런 가운데 금감원은 동양생명과 전·현직 임직원에 대해 징계를 하겠다는 뜻을 밝혀 갈등이 커지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동양생명 관계자는 "조직적인 사기를 당한 피해자에게 '당신이 부주의했으니 관리 책임을 져야 한다'고 중징계를 하는 것은 지나치게 가혹하다"고 말했다. 검찰 수사 과정에서도 당시 회사 차원에서 대출 사기를 알면서도 방치했거나 숨겼다는 근거가 전혀 나오지 않았는데, 금감원이 책임 범위를 너무 넓게 해석해 징계하려 한다는 것이다. 오는 26일 제재심에서도 이 부분이 집중적으로 다뤄질 전망이다. 다만, 검찰 수사 과정에서 동양생명 직원 1명이 6년 동안 유통업자로부터 2600만원 상당의 금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점은 동양생명의 관리 책임을 인정하는 요소가 될 수 있다.
보고펀드 측은 금감원 징계가 국제 소송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우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동양생명 법인과 당시 임원들이 징계를 받으면, 중국 안방보험 측이 국제중재재판소에 가서 "당시 경영진의 관리 부실이 있었다는 걸 한국 금융 당국이 인정했다. 그때 대주주였던 보고펀드도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금융권 일각에서는 "지금 동양생명의 최대 주주가 중국의 안방보험인데, 동양생명이 이번에 징계를 받더라도 보고펀드와의 소송을 감안하면 결과적으로는 동양생명 주인인 안방보험은 나쁠 게 없는 장사이며, 국내 회사인 보고펀드는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와 관련해 금감원 관계자는 "동양생명과 관계자들이 이 사건에 얼마나 책임이 있는지만 판단할 뿐, 이 사건에 얽힌 다른 배경에 대해서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금감원이 사기당한 피해자 입장을 고려하기보다는 금융회사 부실의 관리 책임을 묻는 데 초점을 맞추겠다는 것으로, 금융권에선 감독 당국이 일벌백계했다는 평가를 받고 사건을 마무리하려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육류담보대출
쇠고기 등 냉동 보관 중인 육류를 담보로 금융회사가 대출해주는 것. 유통업자가 쇠고기 등을 창고업자에게 맡기면 창고업자가 담보 확인증을 발급하는데, 유통업자는 이 확인증을 토대로 금융회사에서 대출받는다. 그리고 이후 쇠고기 등을 팔아 대출금을 갚는 형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