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세점 임대료 인하 문제로 인천공항공사와 갈등을 빚다 사업권을 자진 반납한 롯데면세점이 같은 사업권 입찰에 불과 한 달 만에 다시 뛰어든다. 롯데면세점은 "임대료가 싸져서 사업성이 있다고 판단했다"고 19일 밝혔다. 인천공항공사는 "입찰 참여는 자유지만, 롯데가 신뢰를 잃은 것도 사실"이라고 했다.
재계 일각에서는 "나라의 관문에 해당하는 공항 면세점에 자기 마음대로 들어갔다 나왔다 하겠다는 것은 아무리 민간 기업이라도 정도(正道)는 아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구속된 신동빈 회장의 부재로 의사 결정이 오락가락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자진 반납한 사업권 한 달 뒤 또 도전
장선욱 롯데면세점 대표는 지난 18일 언론에 "인천공항 면세점은 포기할 수 없는 곳"이라며 "입찰을 적극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롯데면세점은 인천공항 제1터미널 면세점 3개 구역(8091㎡)에서 영업하다가 지난달 사업권을 포기했다. 2015년 9월부터 2020년 8월까지 면세점을 운영하기로 했던 자리다. 작년 한 해 동안 롯데면세점은 이곳에서 87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김연정 객원기자
포기 이유는 사드 보복 여파다. 사업권을 딸 당시에는 중국 관광객이 계속 밀려들어 올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이후 관광객이 급감했고, 2015년 3840억원이었던 영업이익은 지난해 역대 최저인 25억원까지 급감했다. 이에 롯데면세점은 지난해 9월부터 인천공항공사에 '임대료 인하'를 요구해왔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결국 지난 3월 위약금 1870억원을 물고 사업권을 반납했다.
롯데면세점이 나간 이후 인천공항공사는 과거보다 임대료 하한선을 30~ 48% 낮춰 사업자를 찾았다. 롯데면세점은 임대료 인하에 따라 "수익성이 있다"고 판단하고, 입찰에 참가하겠다고 한 것이다.
그러나 계약 기간을 채우지 못한 롯데면세점은 사업자 선정 평가에서 일정 부분 '감점'을 받아야 한다. 이번 입찰부터 '출국장 면세점 사업 수행의 신뢰성'이란 세부 항목이 신설돼 공항 면세점 운영 계약 기간(5년)을 다 채우지 못한 전력이 있는 업체는 최대 3점(100점 만점)의 감점을 받는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롯데면세점의 행보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시각이 많다. 한 업계 관계자는 "끝까지 버티면서 임대료를 내리지도 못했고 허가권을 가진 준정부 기관에 밉보이는 악수(惡手)를 둔 것"이라며 "의사 결정이 너무 단기적인 관점에서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신라가 따면 1·2위 차 박빙
롯데면세점과 신라·신세계면세점 등 '빅3'가 도전 의사를 밝혔고, 현대백화점그룹과 한화갤러리아, 두산 등도 수익성 분석에 나선 상태다. 글로벌 면세점 사업 1위인 스위스의 듀프리도 참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천공항공사는 면세점 사업권 설명회를 20일 진행하고, 다음 달 23일 입찰 참가 신청서를 받는다. 업체들의 사업제안서와 가격입찰서를 토대로 5월 24일 입찰을 진행한다. 이후 관세청과 협조를 통해 늦어도 6월 중순까지는 최종 사업자 선정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신규 사업자는 7월부터 정상 영업을 시작할 전망이다.
롯데면세점이 다시 사업권을 따지 않으면, 국내 면세점 업계에는 큰 변화가 생긴다. 만약 현재 업계 2위 신라면세점이 사업권을 따면, 업계 1위 자리를 놓고 롯데면세점과 신라면세점이 맞붙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이 경우 지난해 6조600억원이었던 롯데면세점 매출은 5조1900억원으로 떨어지고, 시장 점유율도 41.9%에서 35.9%로 내려간다.
반면 신라면세점 매출은 3조4500억원에서 4조3200억원으로 올라갈 것으로 보인다. 점유율도 23.9%에서 29.9%로 30%대 진입을 목전에 둔다. 인천공항 면세점에서 17년간 부동의 1위 자리를 지켜온 롯데면세점의 아성에 금이 갈 수 있다. 반대로 업계 3위 신세계면세점이 사업권을 확보한다면 2~3위 싸움이 치열해진다. 신세계면세점의 매출은 작년 1조8300억원에서 2조7000억원으로 늘게 된다. 2위 신라면세점과의 점유율 격차는 11.2%에서 5.2%까지 좁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