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 추천 수를 올려야 하는 기사 인터넷 주소를 '좌표'라 부르는 것부터 판박이다. 드루킹은 '문꿀오소리 좌표 찍었는데도 화력 비실'이란 메시지를 경인선 회원들에게 보내 '총공'을 펼치라고 독려했다. '화력' '좌표' 같은 은어와 반말을 쓰는 것까지 아이돌 팬클럽을 닮았다. 경인선 회원들이 애용한 '이니 하고 싶은 대로 다 해'가 대표적. 작년 4월 케이블TV 엠넷 '프로듀스 101' 출연자 장문복에게 일부 팬이 집중적으로 올린 댓글 '문복이 하고 싶은 거 다 해'에서 차용한 것으로 보인다.
경인선은 지난해 8월 문 대통령 취임 100일을 맞아 '고마워요 문재인' 실검 1위를 선물하기도 했다. 이 역시 아이돌 팬클럽 회원들이 음반 발매 기념으로 실검 1위를 선물하는 것과 흡사하다. 작년 11월엔 김정숙 여사 생일을 맞아 '사랑해요 김정숙'이 실검 1위에 올랐다. 지난 1월엔 미국 뉴욕의 타임스 스퀘어 옥외 광고판에 문 대통령 생일 기념 광고가 떴다. 그보다 한 달 전에는 아이돌 그룹 '워너원'의 강 다니엘 팬들이 같은 곳에서 생일 축하 광고를 했다.
◇"아이돌 팬덤과 정치인 지지는 달라야"
문 대통령 측근인 김경수 의원이 드루킹과 연락하며 기사 목록까지 주고받은 정황은 팬클럽 운영자와 아이돌 매니저 관계를 연상시킨다. 열성 팬들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을 갖춘 운영자는 스타들로선 무시 못할 존재. 익명을 요구한 한 대중문화 평론가는 "팬 클럽 운영자나 핵심 멤버들은 공연 전후로 매니저를 통해 아이돌 스타와 분장실 같은 곳에서 따로 만날 수 있다"고 했다. 드루킹 역시 이런 영향력을 무기로 안희정 전 충남지사 같은 유력 정치인을 초청해 강연하거나 지인을 오사카 총영사 자리에 부탁하는 식으로 자신의 힘을 과시했다.
열렬 팬이 안티팬으로 돌변하는 경우도 있다. 1990년대 최고 인기를 끌었던 'HOT' 멤버 문희준은 2001년 그룹 해체 후 록음악을 하겠다고 선언했다가 안티 팬이 형성돼 10년 가까이 고생했다. 인사 청탁이 거절되자 드루킹이 지난 1월 평창 동계올림픽 남북 단일팀 구성에 대해 부정적 댓글을 집중적으로 올린 것과 유사한 패턴이다.
전문가들은 2000년대 초반 등장한 '감성(感性) 정치'가 맹목적 지지를 뜻하는 이른바 '빠 문화'로 변질됐고, 이것이 아이돌 광팬들과 유사한 징후를 보이는 것으로 분석했다. 정치인에 대한 감시나 비판은 사라지고 맹목적 추종과 배반만 남았다는 뜻이다. 황근 선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가 맹목적 추종자 그룹에 의존하게 되면서 이른바 '비판적 지지'는 사라지고 마치 봉건 군주처럼 정치 지도자를 따르는 퇴행적 문화가 만들어졌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