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옆엔 열여덟 살의 비관론자 이병재가 있다. 머리카락을 코까지 늘어뜨린 모습으로 우울, 비관, 피해망상을 랩으로 표현했다. '엄마 아들은 자퇴생인데 옆방에 서울대 누나는 나를 보면 어떤 기분이신가요'로 시작하는 랩이 자식 가진 부모들을 울렸다. 이병재는 "듣는 사람이 뭘 느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음악을 만드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내 곡을 좋아하는 이유는 딱히 모르겠다"고 했다. 옆에 앉은 김하온이 "솔직함, 진솔함. 그게 사람들이 네 랩을 좋아하는 이유"라며 웃었다.
배연서는 이병재처럼 솔직하면서도 김하온처럼 긍정적인 가사를 쓴다. '두 개의 성, 두 개의 이름/두 개의 삶, 두 개의 길을/두 개의 나의 발로 당당히 걸어가'로 이어지는 랩 '이로한'은 엄마의 재혼으로 두 개의 이름을 갖고 살아가는 자기 이야기. 청중 점수로 최고점을 기록했다.
◇꿈을 좇아 학교 밖으로 나가다
방송에서 톱(top)3에 오른 이들은 모두 '학교 밖 아이들'이다. "학교에 있는 시간은 제가 있고 싶어서 있는 시간이 아니고, 제가 원해서 얻는 배움이 아니었어요. 억지로 앉아 있는 시간을 이용해 다른 무언가를 이뤄낼 수 있다고 생각했죠." 김하온 말에 이병재가 뒤를 이었다. "꿈을 찾으라면서 고작 1주일에 2시간 재량 시간 주잖아요. 저는 랩, 기타, 자전거, 복싱, 큐브까지 하고 싶은 게 정말 많았거든요." 배연서는 "성적으로 평가하며 대학을 보내는 공장 같았다"며 "내가 하고 싶은 힙합에 몰두하기 위해 학교를 나왔다"고 했다.
학교 가지 않은 시간엔 뭘 했을까. 김하온은 "책 읽고 영화 보고 산책하고 가사를 썼다"고 했다. 이때 읽었던 책 중 바딤 젤란드의 '리얼리티 트랜서핑'을 최고로 꼽았다. 삶에서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억지로 애쓰지 말고 기쁨을 마음껏 즐기라고 조언하는 책. "'no pain no gain'이라는 말, 너무 잔인하지 않나요? 고통 없이는 얻는 게 없다는 게 너무 슬픈 것 같아요. 그래서 더 웃으면서, 즐기면서 했어요."
이 시간에 '알바' 했던 이야기도 들려줬다. 배연서가 "스피커 사려고 식당에서 소와 돼지를 구우면서 돈을 벌었던 게 생각난다"고 하자 김하온은 "나는 치킨을 구웠다"고 했다. 이병재는 "나는 초밥 냄새만 엄청 맡았는데" 하며 배시시 웃었다. 무대 밖에선 평화를 노래하는 '애어른'도, 세상을 향해 냉소를 보내는 우울한 10대도 찾아볼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