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8.04.25 14:36

저녁으로 가는 이 전철 소리는 늙은 사자 그렁거림 같았다. 배고픈지, 슬픈지, 아니면 행복한지, 뭐 이런 것들을 잃어버린 사자, 그저 눈을 껌뻑거리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내는 사자, 사람들은 그 사자 눈동자를 닮아가며 저마다 그렁거리는 것이었다. 그래, 이런 봄 끝엔 눈이 간지러워야 했다. 전철역마다 나도 눈이 몸이 간지럽다며, 봄이로구나 하며 잠깐 서보지만, 전철역을 떠날 때마다 봄날은 가는 것이로구나 하며 그렁거린다.

봄 따라 움직이는 어깻죽지는 움직거릴수록 짧은 콕 소리, 아 그래, 오래된 목과 허리 소리보다 콕콕거린다. 점점 콕 소리도 제힘이 줄어들어 아쉬워하는데, 어쩔 것인가, 봄날이 내 몸에서 나가기만 하니 말이다. 뭐 이런 것들을 바라보다가 만지다가 잘 가라 손짓하는 사람들도 늘어가리라. 후후, 무덤덤해지는 아까움이거나 내 몸이거나 마음 모두, 이제 심심하다며 침 속으로 스미는데, 목으로 저도 모르게 넘어가는데, 하 계속 봄도 제 몸이 간지러운가 그렁거린다. 

눈을 감으면, 더 환한 봄이었다. 봄아 잘 가라, 더 꾹 감고 손드는데, 또 오른쪽 어깨 관절이 더 뜨끔거린다. 몇 년 동안 어깨가 저도 내 몸인 것을 느끼라며 뜨끔 소리 지려는가? 한쪽 방향으로 빈손을 들었다 놓는 일에도 깜짝거려 멈춘다. 발뒤꿈치나 팔 중간 관절이며, 골반 무릎, 목 허리 등 모두 삐걱거림이야 이젠 귀엽게 들린다. 평생 참아왔으니, 이것도 그저 그러려니 한다. 어느 것이 더 먼저 아니 더 늦게 움직이냐인 것.

한꺼번에 세상 맞이하듯 눈을 확 뜨면, 확확 지나는 내 봄 자락에선 내 안의 것들도 저마다 손드는 것은 마찬가지다. 심장이든, 위든, 폐든, 뭐 다를 바 없다. 물론 내 생각 조각조각들도 그러하다. 그냥이라든지, 슬픔, 외로움이라든지, 싫음, 멍청함, 심심함, 또 즐거움 등등 그 모두, 빠르게 늦게 휘몰아쳐 오는 것을 언제 느끼느냐일 뿐. 아니면, 이도 나 몰라라 홀로 산책하게 어떻게 놔두느냐일 뿐.

그랬다. 봄이 전철 따라가든, 내 몸 따라가든, 그것을 편히 산책하게 하는 일이 중요했다. 그냥 놔두고, 멋대로 움직거리게 하는 일도 그나마 고마워해야 할 것. 아직 글쓰기에 큰 불편이 없으니, 어깨 관절에게 감사할 따름. 또 물론 몸 구석구석 모두에게도 고맙고. 콕 소리, 괴로움, 울음 등에게도 고맙고, 내게 나는 냄새와 느낌에게도 또 고맙고. 그래, 맞아, 살아있는 이 시간에, 또 나를 보고 있는 세상에게 고마울 수밖에. 하, 이곳, 이 자리, 보이는 모두에게도 고마우니, 어어라, 어찌 누구에게 그 무엇에게도 고개 숙이지 아니하랴!

하, 이제 한 번, 고마웠으면 되었네. 웃었으면 되었네. 다가올 큰 아픈 소리도 그저 지금 어깨 통증쯤이라 여기시라, 하, 몸, 시간, 전철 안 등등을 어떻게 다 고맙다며 헤아릴 수 있을까? 전철마다 섰다가 떠나는 봄을, 몸속으로만 흐르는 눈물과 몸 밖으로만 또 흐르는 시간과 바람결들을, 이 모두 봄에 흔들리는 내 머리카락일라, 서로 닮아가는 저녁이올라, 하, 그래도 늦은 해거름 전철은 움직거린다.

어쩌면, 다시 시작이다. 모두 언제나 다시. 아직 전철을 내리지 않고 있으니, 계속 몸에서 피어나오는 시간이 있으니, 콕 거리라며 어깨를 다시 든다. 콕콕거리는 일도 결국 하나의 즐거움이었다. 그들도 내 시간을 만들어주나니, 가는 봄을 만끽해보라는 신호리라. 가만히 있으려는 나를 계속 건드리고 있으라는 내 신호. 하하, 이때는 웃어야 한다. 나를 가만히 두지 못하는 또 나 때문이다.

으하하, 시간아 내게서 자꾸 나오렴. 자꾸 일어나 돌아다니렴. 맞아, 나는 이렇게 나를 건드리다가 반드시 멈출 것이로다. 그냥, 내 것을 두고, 멈춘 내 시간을 바라보며 그대로 서 있으리로다. 또 언제 시작할지 모르니. 지금이란, 나를 싣고 가는 또 다른 ‘지금이란’ 봄으로 가는 저녁 전철 소리는 늙은 사자 그렁거림이 아니어도 좋았다. 다시, 봄으로 가는 전철을 타고 내릴 그런 날이 남아있으니. 이렇게, 나만의 또 한 개 봄날로 가는 것을 보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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