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8.04.26 03:09

경찰·국토부·관세청·공정위 전방위 압박에 최악 위기로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의 '물컵 폭행' 사건이 조양호 회장 일가(一家)에 대한 경찰·국토부·관세청·공정위의 전방위 조사로 확산되면서 창립 49년을 맞은 대한항공이 사상 최악의 위기를 맞고 있다. 일부에선 조현아·조현민뿐만 아니라 조 회장 일가 전체가 회사 경영에서 손을 떼야 한다는 주주(株主) 운동에 나섰다.

25일 오전 서울 강서구 대한항공 본사 정문에서 만난 회사 직원은 "조용하다. 다들 겉으로는 쉬쉬하려 한다"며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 다른 직원은 "술자리도 피하고, 앞으로 어떻게 될지 다들 걱정하는 분위기"라고 했다. 인터넷에서는 연일 조 회장 일가에 대한 각종 비리와 갑질 의혹 제보가 이어지고 있다. 익명의 SNS 채팅방은 1000명 넘는 직원들의 성토장이 됐다. 양동훈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는 "회사 경영진과 직원 사이엔 건강한 소통 채널이 작동해야 한다"며 "대한항공은 내부에서 해결이 안 되고 소통도 안 되다 보니 외부에 폭로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6면 초가'에 빠진 대한항공
국내 한 소형 법무법인은 이날 "대한항공 경영진 교체를 위한 소액 주주 운동을 벌이기 위해 주주를 모으고 있다"고 밝혔다. J&파트너스 법률사무소는 "경영 실패에 대해 책임을 물어 경영진을 교체하는 주주민주주의를 실천하자"며 "소액 주주들로부터 위임을 받아 주주와 회사 이익에 부합하는 경영진을 직접 선출하고, 대한항공 주식 가치를 훼손한 총수 일가가 경영에서 물러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박홍조 변호사는 "이사 해임을 위한 임시 주주총회 소집을 요구하고, 주총 표 대결에서 패하면 법원에 이사 해임 청구 소송도 제기할 것"이라며 "이사에게 경영 책임을 추궁하는 주주 대표 소송도 고려 중"이라고 말했다. 상장 회사의 경우 임시 주총 소집을 위해서는 발행 주식의 1.5% 이상이 필요하다. 주총에서 이사를 해임하기 위해서는 출석 주식 수 3분의 2 이상 찬성, 발행 주식 총수의 3분의 1 이상 이어야 한다.

재계에서는 이번 사태가 회사 내부의 감시 시스템이 전혀 작동하지 않은 데서도 원인을 찾고 있다. 대한항공은 지주회사인 한진칼이 29.96% 지분을 갖고, 조양호 회장이 한진칼 지분 17.84%를 소유한 구조다. 오너와 경영진의 전횡을 막고 감시와 견제 역할을 해야 할 사외이사들이 조 회장 개인이나 회사와 인연이 있는 인물들로 채워져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진칼과 대한항공은 각각 3명과 5명의 사외이사를 두고 있다. 변호사, 교수, 전직 장관 등 항공 산업과 무관한 이들이다. 금감원 전자 공시를 보면 2013~2017년 5년 동안 한진칼과 대한항공 이사회 의안 240건에 대해 사외이사가 반대 의견을 낸 경우는 한 건도 없었다. 전문 경영인들도 마찬가지다. 재계 한 인사는 "오너와 직원 사이에서 범퍼 역할을 해야 할 최고 경영인들이나 측근들이 오너 눈치만 보고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한 결과"라고 말했다.

다른 대기업들도 대한항공 사태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10대 그룹의 임원은 "회사가 위기 상황에 직원들이 도움이 되는 게 아니라 반대로 회사의 적이 되는 걸 보고 많이 놀랐다"며 "평소 직원과 소통이나 관리 실패가 최악의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고 했다. 재계에선 우리나라 대기업 오너 경영 전반에 대한 부정적 분위기로 확산될까 우려한다. 이창민 한양대 경영대학 교수는 "사외이사를 뽑는 과정에서 오너의 입김을 줄일 수 있도록 하고, 전문 경영인에 대한 인사권도 오너가 아닌 이사회에서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재계 인사는 "이번 사태가 대기업 경영과 소유 분리 문제의 큰 선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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