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8.04.30 03:07

협상 세부내용 살펴보니… 긴급수혈 성공했나, 임시봉합에 불과한가

미국 GM과 정부·산업은행이 지난 26일 한국GM 경영 정상화 및 신규 투자와 관련해 잠정 합의했다. 그런데 최근 양자 간에 합의된 세부 투자 내용이 공개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한국GM에 대한 신규 지원 방식이 미국GM은 '대출', 산은은 '출자'로 확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통상 회사가 망하면, 주식은 휴지 조각이 되지만 채권자의 '빚'은 그대로 남아, 반드시 갚아야 한다. 또 대출금엔 '이자'가 따르지만, 주식엔 '수익'이 반드시 보장되지는 않는다.

이런 차이 탓에 자동차 업계와 전문가들은 "일단 10년은 GM이 한국에서 남기로 약속했다고 하지만 한국GM의 이자 부담이 여전한 데다, 10년 뒤 한국GM 경영이 또 어려워지면 GM은 약간이라도 대출금 회수를 할 수 있는 반면 산업은행은 건질 수 있는 게 없는 최악의 경우가 생길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10년 유지 조건 얻었지만 이자 부담은 여전"

정부·산은은 지난 3월 초 GM과의 협상을 시작하면서 "GM이 지분 투자를 하면 산은도 지분 투자를 하고, GM이 대출을 하면 산은도 대출로 신규 투자를 한다는 게 원칙"이라고 했었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이런 원칙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산업은행은 앞으로 8000억원을 투자해 한국GM의 지분을 사지만, GM은 3조원을 한국GM에 대출하면서 지분을 사는 데는 9000억원만 쓰기로 했다.

GM과 산업은행의 한국GM 투자금 외
정부와 산업은행은 "산은도 GM 본사처럼 대출을 할 경우 지분율(현재 17%)이 1% 미만으로 떨어지는데, 그러면 GM을 10년 동안 한국에 남게 하기 위한 핵심 조건인 자산 매각 거부권을 얻어내기 어려운 상황이어서 협상 과정에서 결단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GM 본사의 대출 탓에 이자 부담이 향후 한국GM 정상화에 지장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GM 본사는 작년까지 4.8~5.3% 금리로 한국GM에 빌려준 2조9000억원에 대해 매년 이자 1300억~1400억원을 받아갔다. 작년까지 4년간 적자를 기록한 한국GM에 본사가 '이자 장사'를 했다는 비판이 많았다. 하지만 이번 합의안을 보면 GM 본사의 대출액이 오히려 약 1000억원 더 늘었다. 대출 금리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면 이자 부담은 더 커질 수 있다는 뜻이다. 김필수 대림대 교수는 "빚이 그대로인 상황이라면 향후 연명에만 급급한 상황이 될 수 있다"며 "새로 투입하기로 한 신차가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는 만큼 향후 최종 합의안을 만들 때까지 이자율을 대폭 낮추는 등 부담을 줄일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GM만 대출하는 건 원칙 후퇴"

GM은 대출, 산은은 지분 투자라는 게 형평에 맞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GM은 채권자로서 한국GM이 자본 잠식에 들어가는 등 최악의 상황에서도 빚을 회수해 한국에서 떠날 수 있는 조건을 갖췄지만 산은은 투자금을 회수할 방법이 없다"며 "원래 앞세운 원칙대로 산은도 똑같이 확실한 담보를 잡아 대출 형태로 투자를 하거나, 한국에 10년보다 더 오래 남게 협상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김용진 한국자동차산업학회장(서강대 교수)도 "GM 본사는 아직 한국GM에 리스크가 있다고 보고 회수하기 쉬운 방식의 투자를 하려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정부 고위 관계자는 "GM이 2조9000억원의 기존 대출도 자본금으로 바꿨고 대출이 섞였지만 3조9000억원을 신규 투자하는 등 총 7조원 가까이 투입하기로 한 것은 GM 입장에서도 쉽지 않은 결정"이라며 "한국GM이 흑자가 나지 않으면 대출 상환을 요구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에 벌써 10년 뒤의 일을 걱정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말했다.

또 산은만 지분에 투자하는 대신, 산은이 한국GM이 이익이 날 경우 GM 본사보다 먼저 배당을 받을 수 있는 '우선 배당권'을 받아냈기 때문에 양보만 한 것은 아니라는 반론도 있다.

전문가들은 한국GM 부평·창원 공장을 외국인 투자 지역으로 지정해 법인세를 감면해주는 것이나, 신성장 동력 산업 투자 방식의 지원 등 정부가 쓸 수 있는 카드가 아직 남아있는 만큼, 5월 중순 최종 합의안을 만들 때까지 잠정 합의안의 문제점을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용진 한국자동차산업협회장은 "미래차 연구 개발과 부품 개발 등에 집중해 한국GM에서도 미래차 관련 역량을 기를 수 있게 해야 장기적으로 한국에 남게 될 것"이라며 "향후 정부와 산은이 한국GM의 부담을 덜 수 있는 방안을 더 많이 요구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