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디자인에 눈뜨는 獨 패션계

지난 26일(현지 시각) 독일 베를린의 대형 편집매장 '안드레아 무르쿠디스' 한쪽 수십m 길이 벽에 대나무를 엮어 만든 전시 공간이 설치됐다. 베를린 3대 매장 중 하나인 이곳에서 한국 패션 디자이너 10명이 선보이는 '텐소울(10 Soul)' 팝업 스토어가 열렸기 때문이다. 이 벽을 제작한 매장 대표 안드레아 무르쿠디스는 "멀리서 온 한국 손님들의 작품을 위해 대나무를 자른 뒤 색색의 고무줄로 엮어 특별한 진열대를 만들었다"며 "잔잔한 색 대나무에 한국 디자이너들의 화려한 디자인 옷을 걸어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장식에 쓰인 대나무의 총길이는 2㎞에 달한다.

5월 25일까지 열리는 이 이벤트는 서울디자인재단이 국내 패션 디자이너를 육성하기 위한 사업이다. 서울패션위크에 참여한 디자이너 중 10명을 선정해 해외 유명 매장에서 한 달간 이들의 옷을 판매할 수 있도록 돕는 프로젝트다. 베를린에서 열린 그 첫 번째 '텐소울'엔 패션 브랜드 '뮌'의 한현민, '부리'의 조은혜, '디앤티도트'의 박환성과 '유저'의 이무열 등 10명의 디자이너가 참여했다. 이날 오프닝 행사에는 독일 디자이너 질 샌더와 팔로어 600만명을 거느린 유명 패션 블로거 린드라 메딘을 비롯해 약 1500명이 찾아왔다.

베를린 패션계 사람들은 한국 패션의 실험적 디자인에 열광했다. 디자이너 니콜라 메츠겔은 "독일 패션은 차분하고 단조로운데, 한국 패션은 디자이너가 마치 옷을 가지고 노는 듯 자유분방하다"고 말했다. 디자이너 지망생인 알리샤 두트맨(18)은 "한국 패션은 굉장히 실험적이다. 이런 옷은 대부분 일상에서 입기 어려운데, 과감함과 유머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부담스럽지 않다"며 "대부분 한국을 생각하면 K팝을 떠올리는데 한국 패션이 이렇게 훌륭한 줄은 몰랐다"고 했다. 유럽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패션 전시 업체 '프리미엄 익시비션' 아니타 틸만 대표는 "한국 디자이너들의 제품은 디자인이 참신하면서도 가격은 적절하다"며 "나중에 베를린에서 열릴 쇼케이스에 초청하고 싶다. 좋은 반응을 얻을 것 같다"고 말했다. 안드레아 무르쿠디스는 "한국 디자이너들은 기존 패션과 타협하지 않고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며 어떤 도전도 두려워하지 않는 모험가들"이라며 "프랑스나 독일에서도 이런 도전 정신을 찾기는 쉽지 않다"고 극찬했다.

독일에 첫발을 내디딘 한국 디자이너들도 현지 호응에 한껏 고무된 눈치였다. 박환성 디자이너는 "아시아에선 한국 패션을 높게 평가해주지만 유럽에서는 미미한데 이번 행사를 계기로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사명감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프랑스 파리에서 한국 디자이너들 옷을 선보이는 회사 '로미오 쇼룸'의 오성호 대표는 "한국 디자이너들 옷이 안드레아 무르쿠디스에 걸렸다는 사실 자체가 독일에서 보증수표를 받은 것"이라며 "해외 현지의 평에 귀 기울이면서 많이 보고 느끼고 시야를 넓혀야 해외로 뻗어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