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능 저하·변질 우려해 기한 정해 밀봉상태로 건냉한 곳에 보관해야 원통에 담긴 알약은 1년 내 복용을… 생약·유산균은 부패 위험 커 주의
약도 식품처럼 유통기한이 있다. '유효기한' 또는 '사용기한'으로 표시된다. 약의 사용기한이란, '약의 효과가 90% 이상 지속하는 날짜'를 뜻한다. 보통 제조한 지 2~3년이 지난 시점까지다. 사용기한이 지난 약을 사용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포장을 뜯은 후에는 얼마 동안 사용해도 될까.
◇대부분 사용기한 지나도 효능 유지
사용기한이 지난 약에 대해 전문가들은 대부분의 경우 식품과 달리 부패가 심하게 진행되지는 않는다고 설명한다. 헬스조선 약사자문단 엄준철 약사(편한약국)는 "원료가 화학물질인 약은 시간이 지나도 심하게 변질되지는 않는다"며 "다만, 약효가 점점 떨어져 원하는 효과를 얻기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김병주 약사(참약사약국)는 "약을 만들 때 변질을 막기 위해 특수한 작업을 거치기 때문에 변질 속도는 상당히 느리다"며 "다만, 의약품마다 사용기한을 제조일로부터 2~3년으로 짧게 두는 것은 혹시 모를 변질 가능성과 이에 따른 부작용 때문"이라고 말했다.
실제 미국 국방성은 지난 2000년 미국 식품의약국(FDA)과 함께 사용기한이 지난 96종류 1126개 의약품의 효능을 점검한 바 있다. 그 결과, 검사 대상의 84%가 최대 15년이 지났음에도 효능이 출시 당시와 거의 비슷하게 유지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건냉암소'에 보관… 개봉했다면 겉포장 사용기한과 별도
그러나 여기에는 '제대로 보관했을 경우'라는 전제조건이 붙는다. 약의 보관방법은 '건냉암소(乾冷暗所)'로 표현된다. 습도가 70% 미만으로 건조해야 하며(乾), 온도는 15℃ 미만으로 차가워야 하고(冷), 직사광선이 닿지 않는 어두운(暗) 곳(所)이라는 의미다.
의약품은 건조하고, 차가우며, 어두운 곳에 보관해야 한다. 단, 의약품을 개봉했다면 겉포장에 적힌 사용기한이 아니라, 제품별로 다른 별도의 사용기한을 지키는 것이 좋다. /신지호 헬스조선 기자
여기에 또 다른 전제조건은 '약을 개봉하지 않았을 경우'다. 겉포장에 적힌 사용기한은 밀봉상태로 언제까지 효능이 유지되는지를 의미한다. '약을 개봉하고 나서 사용할 수 있는 기한'과는 의미가 다르다. 약의 포장을 뜯어 내용물이 공기 중에 노출됐다면 설령 사용기한이 남았더라도 약효가 떨어지거나 오염되는 등 변질 가능성이 크다.
특히 시럽·가루·연고·안약은 개봉 후 변질 가능성에 더욱 주의해야 한다. 낱개 포장된 알약의 경우 속포장 뒷면에 별도로 명시된 사용기한을 지켜야 한다. 원통에 알약에 여럿 담겨 있는 제품이라면 개봉하고 나서 1년 이내에 복용하는 것이 좋다. 연고 형태의 제품은 6개월 이내, 물약·시럽은 4주 이내에 사용해야 한다. 좌약과 일부 안약은 개봉 즉시 사용하고 남은 것은 버려야 한다.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은 처방일수만큼만 사용하는 것이 원칙이다. 남은 약을 다음번 증상이 나타났을 때 멋대로 사용하면 엉뚱한 부작용만 부를 수 있다.
◇개봉 전이라도 인슐린·생약·유산균·연질캡슐은 주의
개봉하지 않은 의약품을 건냉암소에 보관했더라도 무조건 안심해선 안 된다. 약에 따라 쉽게 변질되는 경우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인슐린 주사나 항생제 주사액 같은 생물학적 제제, 한약이 주원료인 생약 제제, 프로바이오닉스 등 유산균 제제, 협심증에 쓰이는 니트로글리세린 등이다. 말랑말랑하게 만들어진 연질캡슐도 습기와 온도 변화에 취약하다.
이렇게 의약품이 변질됐을 때의 문제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약효가 감소하는 것이다. 생물학적 제제의 일부는 사용기한이 지나고 나서 효능이 5~50%까지 떨어지는 것으로 보고됐다. 유산균 제제나 생약 제제는 원료의 특성상 변질에 의한 부작용 위험도 있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2010~2013년 사용기한이 지난 의약품으로 소비자 불만이 총 175건 접수됐는데, 이 가운데 17%(29건)가 실제 위해(危害)사건으로 이어진 것으로 집계됐다. 엄준철 약사는 "유산균 제제, 생약 제제, 효소제, 그리고 소화제 중 일부는 변질되거나 곰팡이가 피는 경우가 있으므로, 사용기한을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