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8.05.01 00:06

5G 시대 주도권 잡으려 베팅… 손정의 스프린트, T모바일 합병
버라이즌·AT&T와 3강 체제, 미국 정부 승인이 최종 관건

일본 소프트뱅크의 손정의(孫正義·일본명 손마사요시) 회장이 미국 3·4위 이동통신업체 T모바일스프린트의 합병 협상을 타결하면서 5세대(5G) 이동통신 상용화를 앞둔 미국 통신시장 재편에 나섰다. 소프트뱅크는 스프린트 지분 83%를 가진 최대 주주다.

29일(현지 시각)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따르면 두 회사의 합병은 T모바일의 최대 주주인 도이치텔레콤이 265억달러(약 28조3000억원)를 투자해 소프트뱅크의 지분을 인수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합병 이후 도이치텔레콤은 합병 회사의 지분 42%를 확보한 최대 주주가 되고 소프트뱅크는 지분 27%를 갖게 된다.

또 합병 회사의 이동통신 서비스 가입자는 약 1억 명(작년 말 기준)으로 AT&T(9300만명)를 제치고 버라이즌(1억1600만명)에 이어 2위에 올라서게 된다. 버라이즌과 AT&T의 양강(兩强) 구도도 T모바일·스프린트 합병 회사를 포함한 3강 구도로 바뀌는 것이다. T모바일과 스프린트는 특히 이날 합병을 발표하면서 앞으로 3년간 5G 인프라에 총 400억달러(약 42조원)를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5G 시대에 맞춰 판을 뒤흔들겠다는 것이다.

◇손정의, 美 통신시장 재편 위한 '세 번째 도전'

손 회장은 지난 2013년 스프린트를 216억달러(당시 약 22조원)에 인수한 뒤 미국 통신 시장을 3강 구도로 재편하기 위해 T모바일과 합병을 추진해왔다. 이번이 세 번째 도전이다. 손 회장은 2014년 스프린트와 T모바일 합병을 추진하다가 통신시장 독점을 우려한 오바마 정부의 반대로 실패한 바 있다. 이어 지난해 11월에는 새 합병 법인의 지분 문제를 둘러싸고 소프트뱅크와 도이치텔레콤 간 협상이 결렬되면서 또 한 번 합병에 성공하지 못했다. 소프트뱅크 경영진이 합병으로 스프린트 경영권을 잃을 것을 우려해 협상을 중단했었다. 당시 외신들은 "소프트뱅크가 협상에 다시 나설지 미지수"라고 평가했다.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 회장. 29일(현지 시각) 소프트뱅크가 최대 주주인 미국 4위 통신회사 스프린트는 3위 업체인 T모바일과 합병을 발표했다.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 회장. 29일(현지 시각) 소프트뱅크가 최대 주주인 미국 4위 통신회사 스프린트는 3위 업체인 T모바일과 합병을 발표했다. /블룸버그
이번 협상 타결 과정에서 손 회장의 결단이 결정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니혼게이자이 신문은 "이번 협상 타결은 손 회장의 양보 때문"이라고 전했다. 소프트뱅크 측이 합병 회사의 최고경영자(CEO) 자리를 T모바일 측에 통 크게 양보했다는 것이다. 대신 손 회장과 마르셀로 클라우레 현 스프린트 CEO는 새 합병 회사의 이사진으로 들어간다.

이와 관련 미국 통신업계에서는 "경쟁사인 버라이즌과 AT&T가 이르면 올해 안에 5G를 상용화하겠다는 계획을 잇따라 밝히면서 T모바일과 스프린트가 공동 대응하지 않으면 5G 시대에 뒤처질 수 있다는 위기 의식이 영향을 준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5G 주도권' 합병 명분 내세워 추진

T모바일과 스프린트 양사는 합병 협상 타결 직후 드론(무인비행체), 자율주행차 등 5G 시대 산업을 열기 위해 앞으로 3년간 400억달러(약42조원)를 투자한다고 밝혔다.

양사 CEO는 이날 공동 발표에서 "5G는 2024년까지 미국 내에서만 300만개 일자리와 5000억달러(약 534조원) 경제 효과를 가져온다는 분석이 나온다"며 "새 합병 회사야말로 미국이 확실히 5G 주도권을 잡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T모바일과 스프린트는 '모두를 위한 5G' 등의 표어를 내걸고 합병을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4년 전 오바마 정부 당시 합병 시도가 '소비자 선택권이 제한된다'는 이유로 무산된 만큼 이번엔 양사 합병이 미국 5G 경쟁력 제고에 도움이 된다는 식의 논리를 펴는 것이다.

하지만 승인 여부를 장담하기 어렵다는 전망도 만만치 않다. 트럼프 정부는 자국 첨단 기업을 외국계가 인수하는 것을 막아왔다. 대표적으로 화교 자본이 주축인 싱가포르 반도체 회사 브로드컴이 미국 반도체 기업 퀄컴을 인수하려는 것도 국가 안보를 명분으로 불허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트럼프 정부가 규제 문턱을 낮출 것으로 기대했던 것과 달리, AT&T와 미디어 기업인 타임워너 간 합병에도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면서 미(美) 정부의 승인이 최종 관건이라고 관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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