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8.05.03 03:09

금감원 "이제보니 분식회계"… 정권 바뀌자 15개월만에 뒤집어
회계 부정 제때 못막는 '뒷북 감리'도 문제

금융 당국으로부터 '분식회계' 혐의를 받고 있는 삼성바이오로직스가 2일 "행정소송까지 불사할 것"이라며 당국과 정면 충돌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전날 금융감독원으로부터 "특별 감리(회계에 대한 조사)를 실시한 결과 회계기준을 어긴 혐의가 나왔다"는 통보를 받았다. 1년 3개월 전 "회계기준 위반이 없다"던 금감원이 이번엔 거꾸로 뒤집힌 결론을 내놓은 것이다. 그 여파로 이날 삼성바이오로직스 주가는 전(前)거래일에 비해 17.21% 급락했다. 이에 대해 회계 전문가들은 "당국이 기업 회계에 대한 평가를 자의적으로 뒤집을 경우 주가 하락에 따른 투자자 손실은 물론 기업 경쟁력 약화, 외국인 투자자들의 신뢰 상실 등 우리 경제 전반에 나쁜 영향을 줄 것"이라고 지적했다.

"적폐청산이 경제도 망칠 것"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외부 회계 전문가와 협의해 회계기준을 적용한 것일 뿐 분식회계가 아니다"라며 "향후 심의 단계에서 적극 소명하겠지만 회계 위반으로 최종 결정이 날 경우 행정소송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심병화 상무(경영혁신팀장)는 "자회사의 회계 처리 기준 변경은 국제회계기준(IFRS)에 따라 국내 3대 회계법인으로부터 적정 의견을 받은 사안"이라며 "회사가 독자적으로 판단해 결정하지 않았으며 회계 처리에 따른 부당 이득을 취하지도 않았다"고 강조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처리 문제가 불거진 것은 작년 2월이었다. 시민단체인 참여연대가 분식회계 의혹을 제기하며 금감원에 특별 감리를 요청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논란 과정

2015년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자회사인 삼성바이오에피스의 지분가치 평가 기준을 장부가격에서 시장가격으로 바꾸면서 1조9000억원의 흑자를 본 데에 분식회계 혐의가 있다는 주장이었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 등 야당 의원들도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비슷한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진웅섭 당시 금감원장은 "회계법인 2곳이 감사보고서에서 '적정' 의견을 냈고, 공인회계사회 감리에서 문제점이 발견되지 않는 등 회계기준 위반 사항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답했다.

하지만 금감원은 작년 4월 삼성바이오로직스에 대한 특별 감리에 착수했고, 1일 "회계기준을 어긴 혐의가 나왔다"고 발표했다. 작년 대통령 선거를 통해 정권이 바뀌자 당국이 회계 처리에 대한 평가를 정반대로 뒤집은 셈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앞서 회계법인 감사와 회계사회 감리에서는 '확인되지 않았던 부분'이 나중에 드러났고, 이에 따라 특별감리를 실시한 결과 회계기준 위반 혐의를 밝힌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회계 전문가는 "적폐청산이라는 정치 논리에 따라 지난 정부의 결정을 무차별적으로 뒤집으면 우리 경제에 악영향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 회계에 대한 당국의 평가가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로 뒤집히면서 우리 경제에 예측 가능성이 사라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글로벌 시장에 번질 수 있고, 기업들이 해외로 빠져나가면서 국내 일자리가 줄어드는 상황을 일으킬 수 있다"는 얘기다.

◇기업 옥죄는 '먼지털기식 감리'

현행 회계감리 제도와 운영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은 금융 당국도 인정하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3월 ‘회계감리 선진화 추진단’을 발족하면서 “우리 회계 감리 시스템이 대내외 신뢰도를 높이는 데 기여했는지에 대한 시장의 평가는 회의적”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기업 회계와 관련) 사전 지도와 지원은 미흡한 반면 사후 적발과 제재에 지나치게 편중돼 있다는 평가도 있다”고 했다.

사후 적발과 제재를 중심으로 하는 회계 감리는 기업 옥죄기가 주목적인 ‘먼지털기식 감리’, 대형 회계 부정을 막아내지 못하면서 뒤처리도 질질 끄는 ‘뒷북 감리’ 등 문제로 직결될 수 있다.

작년 국회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최근 3년간 부정 회계를 저지른 상장기업 45개사가 처음 회계기준을 위반한 시점부터 금융 당국이 제재에 나설 때까지 평균 5년 5개월이 걸렸다. 대우조선해양의 경우 최초 회계기준을 위반한 2008년 이후 과징금 부과 등을 하는 데까지 9년 3개월이 걸렸다. 감독 당국의 뒷북 감리로 인해 회계 부정이 은폐되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국민 혈세를 쏟아부어야 하는 부실도 커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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