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연남동에 있는 연필가게 '흑심'의 주인 백유나(29)·박지희(29)씨는 '연필 전도사'다. 이 동갑내기 친구들은 미국, 불가리아, 체코 등을 다니며 오래된 연필을 사모으거나 인터넷에서 열리는 연필 경매에서 빈티지 연필을 사들인다. 이렇게 모은 연필만 400여 종. 인스타그램에 연필 각각의 역사와 디자인 특성을 사진과 함께 소개한다. 최근 '흑심'에서 만난 두 사람은 "시대적 배경과 나라에 따라 연필 디자인이 다 다르다"며 "연필은 역사를 보여주는 자료 중 하나"라고 말했다.
연필 가게 ‘흑심’의 백유나(왼쪽)와 박지희씨. 두 사람은 “매번 보물찾기를 하는 마음으로 연필을 구하는데 희귀한 빈티지 연필을 손에 넣는 순간이 가장 짜릿하고 신난다”고 했다. /이진한 기자
패션디자인을 전공한 두 사람은 수년 전 한 빈티지 연필 패키지 디자인에 매료되며 오래된 연필을 한두 자루씩 사 모으기 시작했다. 이후 사람들에게 다양한 연필을 소개하고 싶다는 생각에 2016년 말 가게를 열었다. 박씨는 "처음엔 주위에서 '요즘 누가 연필을 쓰느냐'며 우려했지만, 연필을 써보고 싶어하는 10대부터 연필에 익숙한 50대 이상까지 다양한 사람이 온다"고 했다.
'흑심'에서 파는 연필은 만든 나라와 시기에 따라 연필의 각인, 로고 등의 디테일과 필기감이 각각 다르다. 가령 '복사용 연필(copying pencil)'은 1870년대 처음 소개된 것으로, 활자 복사를 위해 개발됐다. 지울 수 있는 흑연과는 달리 물기를 머금으면 색이 변하며 지워지지 않는다. 글씨를 쓴 종이 위에 다른 종이를 대고 눌러주면 활자가 복사되기 때문에 1차 세계대전 때 펜과 잉크 대신 이 연필을 주로 사용했다고 한다. 2차 세계대전 시기에 만들어진 연필은 지우개와 연필을 이어주는 '페룰(ferrule)'이 금속이 아니라 두꺼운 종이나 플라스틱으로 돼 있다. 전쟁 중 자원공급이 어려워 금속 사용이 금지됐기 때문이다. 지우개 쪽이 길고 뾰족한 스도쿠용 연필과 보통 육각형인 연필 단면이 직사각형이거나 타원형인 목수용 연필도 갖추고 있다.
두 사람은 낯선 연필을 구하면 연필 관련 서적을 읽고 자료를 검색해 퍼즐 맞추듯 연필의 생산 시기와 국가를 알아낸다. 하나의 연필에 대한 자료를 찾아내는 데 4~5일이 걸리기도 한다. 올 초엔 몽당연필에 1950년대 이후 미국에서 제작된 총알 모양의 연필 홀더를 끼운 패키지 상품을 개발하기도 했다. 이들은 "연필이 사라지지 않는 것은 지금도 소중히 여기며 사용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라며 "희귀하거나 디자인이 예쁜 연필을 계속 발굴해 연필의 아날로그적 가치를 지키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