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8.05.03 03:01

마블 영화, 왜 유독 한국서 강한가… 美·英 이어 세계 흥행 3위
마블 상품 가게도 한국에만 있어 "우리만의 콘텐츠 빈약하기 때문"

지난달 21일 서울 한강시민공원 난지지구엔 난데없이 은하계 영웅 1만명이 모였다. 영화 캐릭터 옷을 입고 5㎞를 달리는 행사였다. 서울 한낮 기온이 26도를 웃돈 날씨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감싸는 타이즈와 두건 차림의 스파이더맨, 헬멧 쓰고 방패를 든 캡틴 아메리카, 가죽 옷을 껴입은 블랙 위도우까지 곳곳에 서 있었다. 이들은 모두 미국 마블 스튜디오 영화에 열광하는 국내 팬들이었다. 이날 스파이더맨 차림의 대학생 김동진(19·서울 서초구)씨도 그중 하나다. 초등학생 때부터 마블 팬이었다는 김씨는 "그동안 모은 마블 캐릭터 피겨가 60개 넘고 동대문시장에서 직접 원단을 구하고 재봉질해 만든 스파이더맨 옷이 7벌"이라고 했다.

지난달 21일 서울 한강에서 열린 ‘마블런’ 행사에 참가한 우리나라의 마블 팬들. 이날 행사장엔 마블 캐릭터로 분장한 사람 1만여명이 몰렸다. 아래 작은 사진은 스파이더맨 복장을 직접 만들어 입고 있는 마블 팬 김동진씨. 그는 이렇게 만든 스파이더맨 옷을 7벌 갖고 있다.
지난달 21일 서울 한강에서 열린 ‘마블런’ 행사에 참가한 우리나라의 마블 팬들. 이날 행사장엔 마블 캐릭터로 분장한 사람 1만여명이 몰렸다. 아래 작은 사진은 스파이더맨 복장을 직접 만들어 입고 있는 마블 팬 김동진씨. 그는 이렇게 만든 스파이더맨 옷을 7벌 갖고 있다.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한국은 '마블 천국'이다. 지난달 25일 개봉한 '어벤져스:인피니티 워'에 1일까지 관객 597만명이 몰아닥쳤다. 500만명 넘기는 데 고작 6일 걸렸다. 역대 마블 영화 중에서 가장 빠르게 흥행하고 있으며, 세계 성적으로도 미국·영국 다음으로 3등이다. 중국에서는 아직 개봉하지 않았지만, 전 세계 4등은 무난하게 달성할 것이라고 영화 관계자들은 예측한다. 인구나 경제 규모를 따져보면 세계 1위권이라고 해도 별문제 없을 정도다. 2012년 개봉했던 '어벤져스:에이지 오브 울트론'은 우리나라가 미국·중국에 이어 세계 흥행 3위를 기록해 우리보다 영화 시장이 1.2배 큰 영국을 제쳤었다. 마블 관련 상품·게임도 날개 돋친 듯 팔린다. 마블 상품만을 파는 '마블 스토어'는 전 세계에서 한국에만 있는 상점으로 서울 2곳, 부산 2곳, 경기 파주 1곳, 경기 시흥 1곳이 각각 성업 중이다. 지난달 열린 '마블런' 역시 아시아에서는 한국만 열린 행사였다.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국가별 첫주 수익
/사진=김동진씨 제공
영화평론가 강유정씨는 "판타지에 대한 수요는 크고 자체적인 콘텐츠는 따로 없는 한국만의 현상"이라고 했다. "영국엔 '반지의 제왕'이나 '해리포터' 같은 자신들의 판타지 영화가 있고, 일본 역시 애니메이션이 넘쳐나지만 우리나라에선 마블을 대신할 콘텐츠가 사실상 없다시피 하다. 눈 높은 한국 관객들이 마블 스튜디오 영화로 쏠리는 이유이며 우리만의 콘텐츠가 빈약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일부에선 현실에서 만날 수 없는 리더십에 대한 갈망으로도 읽는다. 박석환 한국영상대 교수는 "이전 세대보다 풍요롭게 자랐지만 경제성장이 멈추면서 미래가 어둡다고 느끼는 요즘 세대의 갈증이 표출된 것"이라면서 "이들은 현실 대신 초현실적 마블 영화에서 리더를 찾는다. 아이언맨처럼 부자이자 천재이고 초인이면서 정의로운 히어로를 원하는 것"이라고 했다.

여성 팬이 갈수록 늘어나는 것도 흥미롭다. 멀티플렉스 CGV에 따르면 '어벤져스:인피니티 워' 관객 중 여성 관객 비율은 50.3%로 남성관객(49.7%)보다 조금 많았다. 경기 부천시에 사는 한승원(18)씨도 마블의 여자 캐릭터 스칼렛위치의 팬이다. 그는 "기존 영웅 영화에선 여자가 도움을 받는 대상이거나 기껏해야 주인공의 조력자에 그치지만 마블 영화에선 다르다. 강력한 여자 영웅이 등장한다. 그들이 활약하는 걸 볼 때 무척 짜릿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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