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8.05.08 03:10

삼성바이오로직스 3대 쟁점

삼성그룹 계열사인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 회계 논란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시가총액이 사흘 만에 8조5000억원 증발하면서 투자자들이 혼란에 빠지자, 금융위원회가 "신속하게 처리하겠다"고 진화에 나섰다. 사안이 복잡하고 미묘해 문제가 뭔지 정확하게 파악하기조차 쉽지 않다. 상황 파악을 돕고자 '3대 쟁점'을 뽑아 알기 쉽게 정리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사태 일지 외
①왜 자회사 평가 방식을 갑자기 바꿨나?

최대 쟁점은 2011~2014년 4년간 적자 회사였던 바이오로직스가 2015년 말 자회사 회계 처리 방식을 바꾸면서 돌연 1조9000억원 흑자로 돌아선 것이 정상적 회계 처리냐 아니냐는 것이다. 금감원과 참여연대 등 시민 단체는 "중도에 회계 처리 방식을 바꾼 건 분식 회계"라고 주장하고, 삼성 측은 "국제 회계 기준에 맞는다"고 반박한다.

논란의 중심에는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신약 개발 자회사인 삼성바이오에피스가 있다. 2012년 미국 신약 회사 바이오젠과 함께 투자해서 만든 회사다. 그런데 이 회사 가치를 삼성바이오로직스는 2014년까지 장부 가격으로 평가하다가 2015년 말 시장 가격으로 기준을 바꾼다. 이에 대해서 바이오로직스는 2015년 "삼성바이오에피스에 대한 지배력을 상실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회계 기준에서 볼 때 모(母)기업이 어떤 기업에 대해 확실한 지배력을 갖고 있고, 조만간 팔 가능성도 별로 없다면(전문용어로 종속회사라 한다), 그 회사 가치를 장부 가격으로 평가하고, 그 회사의 자산, 부채, 이익 등을 모기업의 재무제표에 반영한다. 반면 지배력이 없다면(관계회사) 단순 투자를 한 것과 마찬가지여서 시장 가격으로 가치를 평가하고 자산, 부채, 이익도 재무제표에 반영하지 않는다.

그런데 바이오에피스는 일반 자회사와 달리 관계가 복잡하다. 2012년 바이오로직스가 바이오에피스를 세울 때 미국 신약 회사인 바이오젠과 85대15로 공동 투자하면서 바이오젠에 바이오에피스 지분을 49.9%로 늘릴 수 있다는 조건으로 계약(콜옵션)을 맺었기 때문이다. 바이오젠으로선 삼성바이오에피스가 사업에 성공하면 적은 돈으로 지분을 49.9% 늘릴 수 있지만, 사업에 실패하면 투자금을 모두 날릴 수 있는 상황이다.

2014년까지 별다른 이익을 내지 못하던 바이오에피스는 2015년 하반기 복제약 판매 허가를 받으면서 실적이 크게 개선될 가능성이 커진다. 이에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콜옵션 계약으로 바이오에피스 지배력을 상실할 수 있다는 사실을 공개하고 자회사 평가 기준을 바꿨다고 주장한다. 바이오젠이 2015년 7월 콜옵션을 행사할 의사가 있다는 편지를 보낸 사실도 공개했다. 회계 장부에 장부 가격 2900억원이었던 바이오에피스는 시장 가격 4조8000억원으로 기재 내용을 바꿨다.

하지만 금감원과 참여연대 등은 2015년에 바이오로직스가 실제 지배력을 상실한 것도 아니고 당시 지배력을 상실할 만한 큰 사건도 없다고 주장한다. 2017년 2월 심상정 정의당 의원과 참여연대는 "갑자기 회계 기준을 바꾼 것은 분식 회계 의혹이 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바이오로직스는 바이오에피스를 만들 때부터 공동 투자하는 등 회사 구조를 설계했는데 2015년 갑자기 지배력을 잃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금감원도 최근 1년간 특별 감리를 한 결과 비슷한 판단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지분이 50%가 넘는 상황이었고, 바이오젠이 2015년 콜옵션 행사 의사만 밝혔을 뿐 2년이 넘도록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고 있어 바이오로직스가 바이오에피스에 대한 지배력을 잃었다고 보는 게 타당하지 않다는 주장이다. 다만 지난달 24일 바이오젠이 실제로 조만간 콜옵션을 행사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어 판관 역할을 맡은 금융위가 쉽게 금감원이나 삼성바이오로직스 손을 들어주기 어려운 상황이다.

②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는 어떤 관련?

둘째 쟁점은 삼성바이오로직스에 분식 회계가 있었다면, 그 의도는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참여연대 등 시민 단체는 "분식 회계로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가치가 부풀려진 게 제일모직에 유리하게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이 이뤄진 근거"라고 주장했다. 2015년 두 회사가 합병하기 전 바이오로직스는 제일모직의 자회사였다. 국민연금은 당시 적자 기업이었던 바이오로직스가 실제로는 11조원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찬성했다. 또 참여연대는 두 회사의 합병 후 삼성바이오로직스라는 미래 성장 가치가 높은 신사업을 갖고 있다고 강조하기 위해 분식 회계를 했다는 주장도 하고 있다.

하지만 삼성 측은 "일의 순서를 보면 두 회사 합병과는 무관한 사안"이라고 일축한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조건이 정해진 것은 2015년 5월이지만 바이오젠의 콜옵션 평가나 바이오에피스가 관계회사로 바뀐 것은 2015년 말의 일이라는 점이 반박 근거다.

③금감원의 이례적 행보는 왜? 삼성이라서?

마지막 쟁점은 금감원의 이례적 행보이다. 금감원이 감리를 실시한 후 최종 결론은 금융위원회의 감리위원회와 증권선물위원회를 거쳐야 확정된다. 그럼에도 이번엔 과거와 달리 금감원이 먼저 언론을 통해 외부에 잠정 결론을 내렸다는 사실을 알렸다. 또 종전에 "공인회계사회의 감리 결과 문제없다"는 태도를 180도 바꿔 중징계를 추진한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이 때문에 금감원이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회계 부정을 입증할 스모킹 건(결정적 증거)이 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업계에서 스모킹 건으로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 회계를 입증할 새로운 내부 문건이나 내부 고발자가 있을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금감원은 분식 회계 혐의가 있다고 주장하면서도 스모킹 건이 뭔지는 함구하고 있다.

금융권에서는 금감원이 "상대방이 삼성이라는 점을 너무 의식해 무리하고 있다"는 뒷말도 나온다. 금융 개혁을 요구하는 청와대·정부와 시민 단체 등을 감안해 삼성과 대결하는 금감원의 모습을 외부에 보여주려 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콜옵션(Call Option)

특정 자산을 만기일 또는 그 이전에 미리 정한 가격으로 살 수 있는 권리. 삼성바이오로직스 사건에서 미국 바이오젠이 가진 콜옵션은 삼성 측과 공동 투자해 만든 회사인 삼성바이오에피스 주식을 '50%-1'까지 살 수 있는 권리다. 바이오젠이 콜옵션을 행사하면 바이오에피스 지분은 바이오로직스가 50.1%, 바이오젠이 49.9%가 된다.

☞종속회사, 관계회사

국제회계기준에 따르면 A사가 지분을 50% 넘게 보유한 기업은 A사의 종속회사로 보고 A사가 지분 20~50%를 가진 회사는 관계회사로 분류한다. 하지만 A사가 B사의 지분을 50% 넘게 가졌더라도 그 기업의 주요 정책 결정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면, B사를 A사의 관계회사로 본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바이오젠이 콜옵션을 행사하면 바이오로직스와 바이오젠의 지분율이 91.2:8.8에서 50.1:49.9로 바뀌어 공동 지배하는 형태가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바이오에피스를 종속회사에서 관계회사로 회계 기준을 바꿔 처리한 것이다.



조선일보 조선닷컴

시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