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노블 '삼별초' 펴낸 형민우, 몽골과 고려 두 戰士의 대결 그려
'프리스트'로 할리우드 진출도 "벤허 같은 영웅 서사에 매력 느껴"
누군가 저항할 때, 그가 쥔 것은 모두 무기라 할 수 있다. 만화가 형민우(44)의 경우 그것은 종이와 샤프다. 최근 그래픽노블(예술 만화) '삼별초'를 펴냈고, 이 역시 종이 위에 흑연으로 그렸다. "교과서에서 맞닥뜨린 이 일당백의 서사에 늘 매혹돼 있었다. 소재를 감당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렸다. 내가 재현할 수 있는 해진 책의 느낌, 만화 본연의 아름다움이 있을 것이다. 어쩔 수 없는 시대가 됐지만 작은 반항이라도 하고 싶다. 종이만화의 감수성으로 불태울 마지막 작품이 될 것이다."
'삼별초'는 지난해 디지털로 옮겨 웹툰 연재된 시즌 1을 책으로 묶은 것이다. 제작 기간만 4년. 몽골에 맞선 삼별초를 다루되, 역사적 진지(陣地)를 몽골 전사(보르츄이)와 고려 유민의 자식(바라이) 두 가상 인물 중심으로 재편해 비극의 드라마를 몰아나간다. "고증에 신경 쓰긴 했으나 보여주고 싶은 건 역사가 아니라 만화적 이야기다. 사내들의 사연을 다루므로 테마는 '무거운 젖은 갑옷'. 선을 많이 넣어 그림의 하중을 늘린 이유도 그것이다." 여름에 시즌 2가 시작된다.
올 10월 10권으로 완결을 앞둔 '이문열 형민우 초한지'(2009)뿐 아니라 '무신전쟁'(2006) '태왕북벌기'(1996) 등 그의 작품 전반에는 수컷의 체취가 진하다. 문신 빼곡한 몸에 할리데이비슨을 타고 다니는 그는 "어릴 적 TV에서 본 '명화극장'의 영향"이라고 말했다. "흑백의 '벤허'나 '칭기즈칸' 같은 대서사시를 보면 주인공이 대개 영웅 아닌가. 총·칼잡이 나오는 마초적인 것들도 많았고."
그리고 여전히 회자되는 '프리스트'(1998)가 있다. 신(神)에 맞서 불사의 몸으로 부활한 신부의 복수극을 세기말적으로 그려낸 만화, 할리우드 영화로 리메이크된 첫 한국 만화, 2003년 연재 중단 이후 숱한 독자를 들끓게 한 애증의 만화. "이대로 가다간 욕만 먹고 끝날 것 같아 멈췄다. 워낙 말이 많으니 괜찮은 그림 작가 섭외해서 다시 해볼까 고민도 했다. 그러다 원작자가 30년 만에 원작을 리메이크한 영화 '매드맥스'를 봤다. 너무 좋았다. 역시 옛 작품을 되살릴 수 있는 건 원작자뿐인가? 내년엔 꼭 시작할 것이다. 하다못해 단편이라도 내겠다. 다만 속도를 내려면 컴퓨터로 그려야 할 것 같다."
해외 33국에서 100만 부 이상 팔려나간 '프리스트' 말고도 프랑스·스페인 등으로 수출된 '고스트페이스'(2008) 등 해외에서 더 주목하는 작가로 유명하다. 그래픽노블에 가까운 그림체, 확고한 장르적 성격 덕분이다. "외국에서는 내 스타일이 오히려 안전하다. 마니아가 많으니까. 그림체 역시 유럽 만화에 빚진 바 있다. '프리스트'도 영국 만화가 사이먼 비슬리 작품을 보며 발전시킨 것이고."
데뷔 25년. "상금 100만원에 눈멀어" 챔프 신인만화가 공모전에 응모한 스무 살 이후 지금껏 그에게 만화는 "가장 즐거운 취미"다. "진지하지 않아 보일 수도 있겠지만, 내겐 그저 즐거운 생계 수단이다. 떠밀리거나 속박되고 싶지 않다. 다작(多作) 못 하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 신념을 버리는 순간 지옥문이 열리지 않을까."
마무리해야 할 작품이 당장 3개나 있지만, 벌써 머릿속에 차기작을 구상하고 있는 까닭일 것이다. "세계 멸망 후 지하 세계의 교회 권력에 갇혀 있는 사람들을 다룬 소설을 한 편 쓰고 있다. 글로 정리한 다음 만화로 그리려 한다." 이 또한 오래 걸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