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한 마리가 술집에 들어왔다|다비드 그로스만 지음|정영목 옮김|문학동네|321쪽|1만3800원
이스라엘 작가 다비드 그로스만(69)의 장편 소설이다. 지난해 영국의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받았다.
이스라엘의 신흥 도시, 어느 클럽의 밤무대에서 공연하는 코미디언이 두 시간가량 늘어놓는 만담(漫談)으로 꾸며진 소설. 57세 생일을 맞은 날 무대에 오른 코미디언의 세 치 혀끝에서 시작한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전개되는 구술(口述) 문학의 기발한 형식을 취했다.
처음엔 가벼운 농담과 세태 풍자로 시작된다. 코미디언은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 독신세(稅)를 제안한다. '혼자 싱글거리는 사람들, 젊고, 건강하고 낙관적인, 그래서 대낮에 휘파람을 불고 다니고, 밤에 엉켜서 재미 보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만이 세금을 내야 하는 똥 쌀 놈들이야'라고 퍼붓는다. 그러나 공연은 서서히 슬퍼진다. 그의 개인사에 깔린 고통의 기억이 농담에 섞여 시나브로 떠오르기 때문이다. 폭력적인 아버지와 우울증에 시달린 어머니 밑에서 자란 코미디언의 개인사 고백에 역사와 사회를 풍자하는 입심이 더해지다가 희극과 비극이 뒤섞일 수밖에 없는 인간의 보편적 운명을 향한 냉소와 연민으로 확장된다.
소설은 만담을 직설적으로 중계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객석에서 듣는 코미디언의 친구 '나'의 간헐적 개입과 성찰도 동원한다. '개인의 광채, 내적인 빛 아니면 내적인 어둠. 비밀, 진동처럼 전해지는 고유성'을 통해 타인을 보려는 '나'의 입장은 인간을 향한 작가의 시선을 대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