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서울 합정동 YG엔터테인먼트 사옥 앞이 수백 명 팬들로 북적였다. 이들이 오매불망 기다린 연예인은 빅뱅도, 위너도 아닌 유병재(30). 그는 소셜미디어로 "집에서 가장 쓸모없는 물건을 하나씩 가져오면 내 얼굴이 새겨진 티셔츠, 안대 등 '유병재 굿즈'와 교환해주겠다"고 공지했다. 이름하여 '대실망 물물교환전'. 교환품을 보고 유병재도, 팬도 실망하게 될 거라 이름 붙였다. 전날 밤 9시부터 꼬박 새웠다는 고등학생 김수민(16), 장혜나(16)양은 "우리 10대는 유재석, 강호동은 몰라도 유병재는 다 안다"며 1000원짜리 비누를 내밀었다. 물물교환에 나온 물건은 변기 뚜껑, 곡괭이, 신던 운동화까지 각양각색. 분홍색 잠자리채를 챙겨온 팬은 "연예인이랑 팬이 만드는 축제"라며 까르르 웃었다.
◇놀이판 만들어주는 게 내 역할
유병재가 기성 코미디판을 갈아엎는 중이다. 일방으로 웃기는 대신, '물물교환전'처럼 팬과 함께 '노는 문화'를 만든다. 유병재는 "콘텐츠만 공급하는 건 오만하다. 다 함께 노는 놀이터를 만드는 데 총력을 기울인다"고 했다. '세상에서 가장 느린 사인회'라며 13시간 동안 사인을 해주고, '유병재 그리기 대회'를 열어 가장 우스꽝스럽게 표현한 그림에 상을 준다.
얼굴을 알린 뒤엔 TV 밖으로 활동 영역을 넓혔다. 인스타그램, 유튜브에 유병재식 'B급 코미디'로 승부를 걸었다. '울음 참기 챌린지' '음 소거 연기 맞히기' '프리스타일 랩 선수권 대회' 같은 유튜브 영상들은 적게는 10만 회, 많게는 300만 회까지 재생된다. '젊음은 돈 주고 살 수 없다면서 젊은이는 헐값에 살 수 있다고 보는 모양이다' '내가 숲 속에 있는데 어떻게 나무를 안 보고 숲을 보느냐' 같은 문구들은 '유병재 어록'으로 불린다. 그는 "창의적인 비유, 유쾌한 비꼬기 등의 문학적 감수성"을 자신의 강점으로 꼽았다.
마이크 하나로 대중을 웃기는 스탠드업 코미디도 부활시켰다. "김형곤·자니윤 선생님이 이끌다 끊긴 스탠드업 코미디의 명맥을 잇고 싶다"고 했다. 지난해 8월 처음 무대에 올린 스탠드업 코미디쇼는 넷플릭스에서 정식 공개됐다. 두 번째 쇼는 티켓 오픈 1분 만에 4000석이 매진됐다. 시국 풍자도 담는다. 그는 "좌냐 우냐, 진보냐 보수냐 등으로 규정짓는 건 코미디언에게 맞지 않다. 우리 사는 시대를 관통하는 이야기를 하는 것뿐"이라고 했다.
마이크 하나로 좌중을 들었다 놨다 하는 유병재는 예능 속 소심한 유병재, 소셜미디어 속 까부는 유병재와는 딴판이다. '뭐가 진짜 유병재냐'며 헷갈리는 사람들도 있다. 그는 "시청률, 조회 수도 중요하겠지만 저는 그저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새로운 코미디언이 되고 싶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