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노믹스(문재인 정부의 경제 정책)의 양대 축은 '소득주도 성장론'과 '혁신 성장'이다. 하지만 본지가 현 정부 출범 1년을 맞아 실시한 설문조사〈본지 5일자 A8면 참조〉에서 경제학자 중 62.8%는 J노믹스가 경제성장에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지난해 우리 경제는 3.1% 성장률을 기록했지만, 전문가들의 평가는 인색하다. 한국경제사학회장을 지낸 거시금융 전문가 최배근 건국대 교수는 "추경편성 등 막대한 재정 투입으로 거둔 성적이라 의미가 제한적이다"라며 "소득 재분배에만 힘을 쏟느라 우리 경제의 성장 동력을 전혀 찾지 못한 것이 J노믹스 1년의 가장 큰 실책"이라고 말했다.
최배근 건국대 교수는 “현 정부가 성장 정책으로 내세운 ‘혁신 성장’은 추상적인 구호 수준에 머물고 있다”면서 “미래 먹거리에 대한 고민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김연정 객원기자
최 교수는 소득주도 성장론을 '성장보다는 재분배에 방점을 둔 정책'으로 평하며, "저소득층 부양만으로는 결코 지속 가능한 경제성장이 보장되지 않는다"고 했다. 정부는 '저소득층 소득이 늘면 소비가 늘고, 내수가 회복돼 기업 투자가 증가하면서 고용이 증가할 것'이라는 선순환 구조를 내세우고 있지만 논리상 오류가 있다는 것이다. 최 교수는 "지금과 같은 개방 경제에서는 저소득층의 소비가 증가하더라도 상당 부분이 중국제 등 저가 수입품으로 유출되기 때문에 국내 기업의 생산이 생각만큼 증가하지 않는다"면서 "설령 내수가 좋아져 기업의 투자가 늘더라도 자동화 설비가 증가하면 고용은 오히려 감소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현 정부가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는 최저임금 인상·정규직화·부동산 보유세 강화·법인세 인상 등 재분배 정책은 경제에 활력이 넘쳐 대다수가 수용할 수 있을 만한 여력이 갖춰져야 성공할 수 있는 것"이라며 "경제 파이를 키울 수 있는 동력이 없는 상태에서는 갈등의 씨앗이 될 뿐 지속 가능성이 없다"고 했다.
앞서 본지 경제학자 설문조사에서 '남은 임기 동안 중점적으로 추진해야 할 과제'를 묻는 질문에 대다수(70.6%)가 꼽은 것은 '성장 동력 확충'이었다. 이와 관련, 최 교수는 "현 정부에서 미래 먹거리에 대한 고민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이것이 청년 일자리가 늘지 않는 근본적인 이유"라면서 "현 정부가 성장 정책으로 내세운 '혁신 성장'은 추상적인 구호 수준에 머물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지난해 말 산업통상자원부가 자율주행차, 드론, 스마트팜 등 혁신 성장 관련 육성 사업을 줄줄이 발표했지만, 구체적인 알맹이는 하나도 없었다"며 "다른 선진국들은 기존 제조업에 정보통신기술을 묶어 산업 생태계를 업그레이드하는 데 혈안이 됐는데 우리는 이에 대한 노력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자동차, 조선업종 등에서 진행 중인 기업 구조조정 분야에서 정부가 고수해야 할 핵심 원칙은 특정 기업의 회생 여부가 아니라 해당 산업 전체의 생태계를 살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경쟁력 없는 것은 과감히 버리고, 경쟁력 있는 분야의 기업은 통합을 추진해 더욱 경쟁력을 높일 필요가 있다. 지금처럼 살아날 가능성 없는 기업의 회생을 돕는 것은 세금 낭비일 뿐이고, 좀비 산업을 만드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정부가 추진 중인 재벌 개혁에 대해 최 교수는 "재벌 개혁을 명분으로 주주 자본주의식 개혁을 하게 되면 몇몇 우량 기업의 경우 외국인 주주들에게만 혜택이 돌아가기 때문에, 국민 경제의 선진화로 이어진다고 볼 수는 없다"고 말했다. 다만 "재벌 스스로 특권 의식을 내려놓고 국민 눈높이에 맞게 글로벌 스탠더드를 갖추는 노력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