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8.05.11 03:10

주민은 환영, 상인들은 반발

10일 오후 경북 포항시 북구 롯데마트 두호점. 2015년 3월 완공했지만 5층짜리 건물 곳곳에는 '출입 금지' 안내판이 붙어 있었다. 인근 전통 시장 상인들의 반대에 부딪혀 3년이 넘도록 영업을 못하고 있다. 간판도 내걸 수 없다. 문이 굳게 닫힌 매장에는 먼지가 수북했다.

2015년 완공됐으나 시장 상인들의 반대로 3년 넘게 문을 열지 못하고 있는 롯데마트 포항 두호점 앞에‘출입금지’안내문이 걸려 있다.
2015년 완공됐으나 시장 상인들의 반대로 3년 넘게 문을 열지 못하고 있는 롯데마트 포항 두호점 앞에‘출입금지’안내문이 걸려 있다. /김동환 기자
길창섭(53) 두호동 자생단체장협의회장은 "마땅한 쇼핑 시설이 없어 쇠락한 주택가를 없애고 세운 대형마트인데, 도대체 언제까지 개장을 기다려야 하느냐"고 말했다. 30분 넘게 차를 타고 남구쪽 대형마트를 찾고, KTX를 타고 가 대구 신세계에서 쇼핑하는 주민도 적지 않다고 했다. 길 회장은 지난해 '주민 의사를 존중하라'며 시청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포항의 대표적 전통 시장인 죽도시장 허창호(48) 상인회장은 "시민의 불편함은 알지만, 두호점이 들어서면 상인들이 생존 터전을 잃는다"고 말했다. 포항시는 공청회를 연 적은 있지만 양측의 간극을 좁히지 못하고 시간만 보내고 있다.

주민 "조속 건립", 영세 상인 "결사반대"

복합 쇼핑몰을 놓고 지역 주민과 상인 간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업체와 지역 상인의 대립 구도가, 주민과 상인의 갈등으로 번지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주민은 편리한 쇼핑 환경을 요구하고, 지역 상인은 생존권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중재를 해야 할 지자체는 유통 업체와 상인의 '자발적 상생 합의'를 앞세우며 뒤로 물러앉아 있다. 업체들은 최근 반(反)대기업 분위기가 무서워 적극적으로 사업을 추진하지 못하고 있다.

지역 주민·상인 갈등 고조되는 쇼핑몰 사업
지역 주민·상인 갈등 고조되는 쇼핑몰 사업
서울 마포구 상암동 롯데 복합 쇼핑몰도 마찬가지다. 주민 모임인 '서부지역발전연합회' 회원들은 10일 잡초가 우거진 공터에 모여 조속한 사업 추진을 촉구했다. 이들은 '4년 반을 기다린 DMC쇼핑몰, 반드시 허가받아 서부 관문 열고 가자'는 팻말을 들었다. 롯데는 2013년 지하철 6호선 디지털미디어시티역 인근 땅을 매입해 복합 쇼핑몰 건립을 추진해왔다. 하지만 서울시가 망원시장 등 인근 상인들의 반대를 이유로 허가를 내주지 않아 사업이 4년 넘게 표류하고 있다.

신종식(69) 회장은 "차로 3㎞ 넘게 떨어진 시장의 일부 상인 반대로 지역 일자리 창출과 지역 경제 활성화가 올스톱했다"며 "반대를 위한 반대, 떼법을 앞세우는 지역 상인 편만 드는 서울시에 분노한다"고 말했다. 회원들은 오는 12일 오후 상암동 디지털미디어시티에서 주민 500여 명이 참가하는 항의 집회를 연다.

반면 상암동 롯데 복합 쇼핑몰 반대 대책위원회의 서정래(56) 위원장은 "지금도 대형 마트로 지역의 소비가 빨려 들어가고 있는데, 블랙홀 같은 초대형 복합 쇼핑몰이 들어서면 지역 상권은 초토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태규(57) 망원시장 상인회장은 "복합 쇼핑몰이 들어서면 시장은 물론 주변 상점 수백 곳이 점차 사라질 것"이라며 "유통 대기업이 지역 경제의 실핏줄인 전통 시장 상권과 공존하는 해법을 내놓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4자 공론장'에서 논의를

지난달 개장한 롯데몰 군산점을 둘러싸고는 상인 간 갈등마저 일어나고 있다. 군산몰은 영업 면적 2만5000㎡(약 7500평)로 도심형 아웃렛과 극장 등이 결합된 복합 쇼핑몰이다. 지역 소상공인 단체 3곳이 중소벤처기업부에 사업 조정을 신청했으나, 롯데와 상인 측이 8차례 협의에도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 이후 롯데는 개장을 강행했고, 중소벤처기업부는 롯데에 영업정지 명령을 내렸다.

70여 지역 상인들이 모인 군산 조촌동 상가번영회의 전락배(57) 회장은 "날만 어두워지면 우범 지역처럼 바뀌던 곳이 상권 활성화의 핵심 거점이 됐다"며 "동군산 지역 발전을 위해 반드시 영업을 계속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근 전주로 쇼핑을 가던 주민들이 군산몰을 찾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이인규 군산어패럴상인협동조합 이사는 "일반 분양해야 할 대규모 땅을 특정 사기업에 특혜 분양했고, 앞으로도 업종이 겹치는 주변 상인들의 피해가 불 보듯 할 것"이라며 "대안 없이 개장을 강행한 롯데, 행정 편의적으로 진행한 군산시 모두 상인 피해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10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롯데 복합쇼핑몰 예정 부지에서 쇼핑몰을 찬성하는 주민 모임인 서부지역발전연합회의 신종식(오른쪽) 회장과 회원들이 서울시의 건설 인허가를 촉구하고 있다.
10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롯데 복합쇼핑몰 예정 부지에서 쇼핑몰을 찬성하는 주민 모임인 서부지역발전연합회의 신종식(오른쪽) 회장과 회원들이 서울시의 건설 인허가를 촉구하고 있다. /주완중 기자
10일 서울 마포구 망원시장에서 최태규(가운데) 상인회장과 동료 상인들이“복합쇼핑몰이 들어서면 지역 경제 실핏줄인 전통 시장과 작은 상점들이 사라질 것”이라며 대응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10일 서울 마포구 망원시장에서 최태규(가운데) 상인회장과 동료 상인들이“복합쇼핑몰이 들어서면 지역 경제 실핏줄인 전통 시장과 작은 상점들이 사라질 것”이라며 대응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채성진 기자
중기부는 롯데와 조합 간 협상 자리를 마련하겠다는 입장만 밝히고 있다.

신세계그룹의 초대형 복합 쇼핑몰 '스타필드 창원'도 상황이 비슷하다. 1500여 명이 가입한 '스타필드 창원 시민 지지자 모임'의 신승복(36) 공동 대표는 "인구 100만 도시 창원에 제대로 된 쇼핑과 여가 시설이 없어 시민들이 부산 해운대나 센텀시티로 원정 쇼핑을 가고 있다"며 "시에서 인허가 과정을 조속히 진행하라"고 촉구했다. 시청 온라인 게시판에는 '스타필드 유치를 바란다'는 글 4000여 건이 올라와 있다. 신 대표는 "이번 지방선거를 앞두고 후보자를 상대로 유치 관련 방침을 공개 질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반면 승장권 창원소상공인연합회 회장은 "시내 대형 유통점은 이미 과밀화돼 마이너스 성장세로 돌아섰다"며 "이런 상황에서 매머드급 스타필드 매장이 들어서면 소상인들이 붕괴해 조선업 불황으로 휘청거리는 지역 경제에 타격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창원시는 다음 달 지방선거 이후 본격적으로 논의하겠다는 방침이다.

전문가들은 정부와 기업, 지역 주민과 상인 등 4자가 공론의 장을 통해 정해진 기한 안에 갈등을 해결하는 방식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용구 숙명여대 교수(경영학)는 "구(舊)도심 상권 활성화를 추진하며 이런 과정을 거쳐 참여자가 상생했던 영국 사례를 벤치마킹해볼만 하다"며 "지역 사회가 원하는 것, 기업이 해줄 수 있는 것을 서로 허심탄회하게 내놓고 현실적 해법을 마련하는 새로운 관례를 만들지 않으면 개장 지연 사태는 더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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