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8.05.14 02:17

조용필 50주년 전국 투어 시작… 빗속에서 관중 4만5000여명 열광
창밖의 여자·바운스 등 25곡 불러 "앞으로 50년은 더 기억되고파"

"해주고 싶었던, 꼭 전하고 싶었던 그말, 땡스 투 유!"

12일 서울 잠실 올림픽주경기장. 50주년 기념 전국 투어의 첫 공연 무대에서 가왕(歌王) 조용필(68)이 새 오프닝곡 '땡스 투 유'를 불렀다. 팬들에 대한 고마움은 물론 새 앨범에 대한 힌트가 담긴 세련된 EDM 편곡에 환호성이 터졌다. 분명 공연 전 인터뷰에서는 "나이 드니 힘이 떨어진다" 했었는데, 노래 한 소절마다 힘이 넘친다. 카랑카랑한 탁성과 배 속 깊이부터 한 음 한 음 찍어 올리는 듯한 음압도 여전했다. 화려한 불꽃과 함께 오후 8시쯤 등장한 가왕은 공연 내내 신이 난 어린아이처럼 뛰어다니며 "저 건강하죠?" 하며 웃어 보였다. '아, 속았구나' 싶었다.

조용필은 '여행을 떠나요' '못 찾겠다 꾀꼬리'를 연달아 불러 객석을 춤추게 만들더니 "비 지겹습니다"라고 너스레를 떨어 관객들 웃음보까지 터뜨렸다. 그는 지난 2003년, 2005년 연 공연을 우중(雨中) 콘서트로 진행했다. 이날도 공연 내내 5~10㎜쯤 비가 왔다. 바로 옆 야구장에서는 예정된 경기가 취소됐다. 하지만 조용필 공연의 관중 4만5000여명은 얇은 우비 한 장으로 버티며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이날 조용필은 90m쯤 앞뒤로 움직이는 무대로 멀리 떨어진 관중석까지 바짝 다가가 노래했다. 고추잠자리, 창밖의 여자, 단발머리, 바운스 등 25곡을 2시간 반에 걸쳐 완창했다. 공연장 공기를 엉겨붙게 만든 눅눅한 습기마저 가왕 특유의 절창을 가로막진 못 했다. 그가 아주 간소한 반주만으로 이어붙인 민요곡 '한오백년'과 '간양록'에서 "한 많은 이 세상"을 내지를 땐 너 나 할 것 없이 '헉' 숨을 집어삼켰다. 데뷔 50년쯤 되면 시간과 공기를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능력이 생기는 걸까. 절묘한 완급 조절에 빗줄기마저 멈추는 기분이 들었다. 각 분야의 최고 세션 연주자인 '위대한 탄생' 멤버들도 '장미꽃 불을 켜요' 등에서 불꽃 같은 솔로 연주를 쏟아냈다.

조용필은 "(히트곡) 다 하려면 3일 걸린다. 다 못 들려줘 늘 죄송하다"며 이번 공연 선곡에서 빠진 그 겨울의 찻집, 허공 등의 노래를 직접 통기타를 치며 1절씩 들려줬다. 여기저기 쏟아지던 '떼창'이 "스톱, 스톱. 더 하면 다 불러야 돼" 하며 웃는 그의 손사래를 지휘자처럼 따랐다. 조용필도, 관객도 시간이 지날수록 지치기는커녕 더욱 쌩쌩해져 갔다. 공연 막바지쯤 그가 '비련'의 "기도하는~" 대목을 애절하게 울려내자 팬들은 찢어질 듯한 "꺅~" 비명소리로 화답했다. 시계를 거꾸로 돌려 '영원한 오빠'와 '오빠부대'로 돌아간 모습이었다.

공연 직후 인근 지하철역으로 향하는 관객들 행렬은 마치 재난 영화처럼 끝이 안 보였다. 그중 20대 관객도 많았다. 백모(27)씨는 "잘 모르는 옛날 곡이 많았는데 전혀 촌스럽지 않아 깜짝 놀랐다"고 했다. 조용필이 공연 전 가진 간담회에서 한 말이 떠올랐다. "열다섯 살 청중도 좋아할 수 있는 음악을 하면 그들이 앞으로 50년은 더 나를 기억해 주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