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파리 유서 깊은 르 뫼리스(Le Meurice) 호텔 총괄 파티시에인 세드릭 그롤레(Grolet·32·사진)는 세계에서 가장 인기 많은 파티시에(제과제빵사)로 통한다. 요즘 인기 척도인 인스타그램 팔로어가 91만8000여 명. 주방에서 조용히 디저트 만드는 사람이 웬만한 아이돌 스타보다 팔로어가 많다.
그가 소셜미디어 스타가 된 건 아름답고 정교한 디저트 때문이다. 그가 만든 레몬·오렌지·사과 등 과일 모양 시리즈 디저트는 실제 과일과 똑같아 보인다. "트롱프 뢰유(trompe l'oeil·사람들이 실물로 착각하게 한 그림)"란 찬사가 따를 정도다.
요리책 '과일(Fruits)' 출간에 맞춰 방한한 그를 12일 서울 역삼동 허니비케이크 쿠킹스튜디오에서 만났다. 시선을 사로잡는 디저트로 유명해졌지만 정작 그는 "디저트에서 가장 중요한 건 맛"이라 했다. "시각적 아름다움은 손님의 첫 방문을 유도하지만, 그 손님을 단골로 만드는 건 결국은 맛입니다."
그롤레는 "시각이건 미각(味覺)이건 단순함을 추구한다"고 했다. 그가 디저트를 단순하게 과일 모양으로 빚는 이유다. "이것저것 장식을 덧붙이는 건 실수를 감추기 위해서죠. 가장 단순해 보이는 디저트가 실은 가장 만들기 어렵고 복잡해요."
파티시에 세드릭 그롤레의‘오렌지’디저트. 실제 오렌지와 똑 닮았지만 화이트초콜릿, 생크림, 젤라틴 등으로 만든 가나슈(크림)에 오렌지 마멀레이드를 채워 넣은 다음 주황색 식용색소로 코팅한 것이다. /에디시옹 알랭 뒤카스
그는 "파티시에의 역할은 과일을 그냥 먹을 때보다 더 맛있게 맛보게 해주는 것"이라고 했다. "과일마다 지니는 독특한 풍미를 각각 다른 방법으로 부각해야 합니다. 감귤류는 생과일로 신선하게 조합될 때 매력을 가장 잘 발산하고, 딸기는 따뜻하게 데운 상태에서 설탕과 올리브오일을 약간 두르는 간단한 조리법으로 맛을 살릴 수 있죠."
세계 주요 도시에 제과점을 내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 매달 전 세계 도시 2~3곳을 방문하고 있다. "도시와 국가마다 문화와 미감(味感)이 다릅니다. 이걸 파악하고 이해한 다음에야 가게를 열 수 있죠." 서울 방문은 이번이 두 번째. 그는 "한국 음식은 양념이 복합적이고 간을 많이 한다는 인상을 받았다"며 "단순해 보이지만 다양한 재료로 복합적 맛을 내는 내 디저트와 닮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