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전자업체 트랜션(Transsion)은 작년 아프리카 스마트폰 시장에서 삼성전자를 꺾고 첫 1위를 차지했다. 프랑스 스마트폰 시장에선 위코(wiko)가 점유율 27%로 삼성(27.1%)을 턱밑까지 추격하며 2위에 올랐다. 프랑스 브랜드로 포장된 이 회사도 중국 스마트폰 제조업체 티노모바일이 지분 95%를 갖고 있다.
한국이 상대적으로 강세를 보이고 있는 유럽과 신흥국 시장에서도 중국 스마트폰 업체들이 빠르게 한국을 추격하고 있다. 화웨이·샤오미·오포·비보의 중국 대표 4인방뿐만이 아니다. 무명(無名)의 중국 업체들이 세계 곳곳에서 삼성전자를 꺾거나 턱밑까지 추격하고 있다. 본지가 2013년부터 2018년 1분기까지 북미·중남미·아시아태평양·중동아프리카·서유럽·중동부 유럽 등 세계 6대 주요 시장의 변화를 분석한 결과다. 중국과 인도에 이어 삼성전자의 텃밭인 유럽과 중동·남미·아프리카 등 신흥 시장에서도 힘겨운 싸움이 본격화한 것이다. 중국의 강소 브랜드는 글로벌 통계에서 '기타(others)'로 분류된다. 하지만 중국의 기타 브랜드들은 '제2의 화웨이'를 꿈꾸며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삼성은 5년 새 세계 시장 점유율이 32.3%에서 22.6%로 하락하며 '불안한 1위'를 지키고 있다.
◇세계 곳곳서 삼성 턱밑까지 추격한 中國
삼성의 점유율이 지난 5년 새 가장 크게 밀린 곳은 중동·아프리카 시장이다. 2013년부터 1위를 지키고 있지만 점유율은 2013년 62.6%에서 올 1분기 36.2%로 크게 줄었다. 빈자리는 중국 업체들이 꿰찼다. 화웨이가 두 배 이상으로 점유율(10.3%)을 늘렸다. 중국 트랜션이 보유한 스마트폰 브랜드 테크노(8.9%)와 아이텔(7.4%)도 약진했다. 인구 12억의 아프리카 시장만 따로 보면 테크노·아이텔의 합산 점유율(28%)은 작년에 이미 삼성(27%)을 넘어섰다.
유럽도 중국 바람이 거세다. 삼성은 서유럽과 중·동부 유럽 시장에서 각각 10%포인트 이상 점유율을 잃었다. 러시아·폴란드·리투아니아 등 16국이 속한 중·동부 유럽에선 작년에 팔린 스마트폰 3대 중 1대가 중국제였다. 화웨이·샤오미가 나란히 2~3위를 차지하며 애플을 4위로 밀어냈다. 노키아의 본거지 핀란드에서는 작년 3분기 화웨이가 깜짝 1등을 차지하기도 했다. 미국 진출이 좌절된 화웨이는 작년 신제품 발표회를 독일 뮌헨·베를린, 지난 3월에는 프랑스 파리에서 여는 등 유럽 시장에 공을 들이고 있다.
중국·일본이 포함된 아시아·태평양 시장에선 삼성 점유율(13%)이 5년 새 거의 반 토막 났고 순위도 공동 3위로 미끄러졌다. 미국 정부가 중국 업체들의 진출을 막고 있는 '무풍(無風) 지대' 북미 시장마저 담이 허물어지면 삼성은 더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 업체 공략 갈수록 거세져
이런 시장을 공략하려는 중국 업체의 발걸음은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 중국 화웨이는 지난 8일(현지 시각) 아프리카에서 초저가 스마트폰 Y3를 공개했다. 구글의 보급형 운영체제 '안드로이드 고(Go)'를 탑재한 제품이다. 가격은 8만~9만원 안팎으로 예상된다. 중국 트랜션이 장악한 시장에서 화웨이가 반격에 나선 것이다.
온라인 판매를 중심으로 성장해온 샤오미는 이달부터 유럽 오프라인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든다. 샤오미 창업자 레이쥔(雷軍) 회장은 지난 3일 영국 통신업체 스리UK를 보유한 CK허치슨과 전략적 제휴를 체결했다. 왕샹 수석 부사장은 트위터에 "5월 22일은 프랑스, 24일엔 이탈리아에 진출한다"는 글도 올렸다. 오프라인 중심으로 성장해온 중국 오포는 온라인 전용 브랜드인 '리얼미(realme)'를 새롭게 만들고 15일 인도 시장에 첫 제품을 내놓는다. 인도에서 삼성을 꺾고 1위를 달리는 샤오미를 겨냥한 제품으로 이름도 샤오미와 비슷하게 지었다.
신흥 시장에서 중국이 급부상하면서 삼성은 프리미엄과 중저가 시장 양쪽에서 점유율을 잃는 샌드위치 상황이 심화되고 있다. 북미와 유럽 프리미엄 시장에서는 여전히 애플의 벽에 막혀 있는 반면 중저가 시장은 빠르게 잠식당하고 있는 것이다. 정옥현 서강대 전자공학과 교수는 "중국 스마트폰과 성능·기능·디자인이 모두 비슷한 상황에선 결국 가격 싸움"이라면서 "삼성·LG도 중국의 값싸고 질 좋은 부품을 과감하게 도입하고, 통신업체별 맞춤형 소프트웨어(SW)와 모델 수를 줄여 제조 원가를 낮춰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