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8.05.16 01:20

파리 데뷔 50년 맞은 김인중 신부, 스테인드글라스 등 5000점 多作
유럽 각지서 '빛의 화가'로 찬사… 올해 佛에 '김인중 미술관' 개관

"세상에 아름다운 빛을 선사해준 '페르(신부) 킴'을 모시겠습니다."

지난 13일(현지 시각) 파리 시내 동쪽의 생플루아 성당. 미사를 진행하던 신부가 짧은 백발(白髮)의 재불 화가 김인중(78) 신부를 제단 가운데로 불러내자 400여 신도가 열렬한 박수로 환영했다. 김 신부는 1968년 세워진 이 성당 설립 50주년을 기념하는 그림 50점을 그려 이날부터 5개월간 전시하기로 했다. 성당 관계자가 "하나 둘 셋!" 구호와 함께 작품들을 가리고 있던 흰색 천을 바닥으로 떨어뜨리자 쉰 점의 유화(油畵)가 나타났다. '빛의 순례'라는 주제로 그려진 작품들은 파랑과 주황, 노랑과 보라 등 다양한 빛의 색상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며 그 우아한 자태를 드러냈다.

생플루아 성당이 동양인 신부에게 50주년 기념 전시를 부탁한 건 신도들이 김 신부의 이전 작품에 매료됐기 때문이다. 2012년 이 성당의 제단 중심부에 내건 가로 1m, 세로 6m짜리 초대형 그림 넉 점. 이날 미사가 끝나자 김 신부 앞으로 신도 수십 명이 다가와 도록(圖錄)에 사인을 요청했다.

김인중 신부가 파리 시내 생플루아 성당에서 설교하고 있다. 뒤에 보이는 대형 그림 넉 점은 김 신부가 빛을 주제로 그려 2012년부터 이 성당 제단 중심부에 건 작품이다.
김인중 신부가 파리 시내 생플루아 성당에서 설교하고 있다. 뒤에 보이는 대형 그림 넉 점은 김 신부가 빛을 주제로 그려 2012년부터 이 성당 제단 중심부에 건 작품이다. /생플루와 성당

올해 50년을 맞은 건 생플루아 성당뿐이 아니다. 김 신부 역시 1968년 혈혈단신 유럽으로 건너와 화단(畵壇)에 데뷔한 지 50년을 맞았다. '신부 겸 화가'로서 50년간 5000점이 넘는 작품을 쏟아냈다. 스테인드글라스, 도자기, 회화 등 '3가지 날개'로 활동하는 김 신부의 애칭은 '빛의 화가'. 특히 동양화의 선(線)과 서양 추상화를 접목한 스테인드글라스는 유럽 작가들과 뚜렷이 차별화되는 역작으로 정평이 나 있다. 김 신부가 스테인드글라스를 만들어준 성당만 프랑스, 독일, 벨기에 등에 걸쳐 35곳에 달한다.

2010년 프랑스 정부가 주는 문화예술훈장인 '오피시에'를 받았다. 2016년엔 한국인으로는 처음 '아카데미 프랑스 가톨릭' 회원에 추대됐다. 폴 세잔 협회 회장인 저명 미술 평론가 드니 쿠탄은 2015년 김 신부에 대한 비평서 '김인중, 획을 통해'를 출간했다. 드니 쿠탄은 김 신부에 대해 "회화에서는 인상파 세잔, 스테인드글라스에서 야수파 마티스, 도자기에선 입체파 피카소를 계승한다"고 했다.

유럽에 온 지 50년째를 맞아 김 신부는 "영광스러운 한 해를 맞고 있다"고 했다. 프랑스 중부 도시 앙베르는 올 연말 김 신부의 이름을 딴 '김인중 미술관'을 개관한다. 김 신부의 작품을 보고 감명받은 앙베르 시장(市長)이 옛 재판소를 미술관으로 개조하면서 김 신부의 작품을 영구 전시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오는 7월에는 호주 애들레이드에 그의 이름을 딴 미술관 '김인중 스페이스'가 문을 연다.

천주교 도미니칸회 소속인 김 신부는 서울대 미대 회화과를 졸업한 뒤 ROTC 1기 장교로 군 복무를 마쳤다. 미술 교사로 일하다 '예술의 나라'에 가고 싶어 유럽으로 떠났고, 스위스 유학 도중 사제가 됐다. 그는 "한국에 있을 때 국전(國展)에서 계속 낙방한 것이 겸허한 마음을 갖게 했다"며 "어둠을 알아야 빛도 이해할 수 있다"며 빙그레 웃었다. 체력도 끄떡없다. 체조와 농구로 단련한다. "곧 여든이 되지만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생각하고 작품 활동을 합니다. 궁극의 아름다움은 나이를 잊게 하는 젊은 에너지에서 나오는 것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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