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8.05.18 02:01

[제71회 칸 영화제]

이창동 '버닝', 강력한 수상 후보로… "최고의 연출·최고의 연기" 호평
음악과 빛으로 배우들 감정 표현… 청춘의 불안과 사랑, 절망 그려내

"이창동 감독은 밑바닥 젊음의 좌절을 숨 멎을 듯한 이야기로 표현해냈다." 영화비평 웹진 인디와이어가 17일(이하 현지 시각) 내놓은 평이다. 올해 프랑스 칸영화제 유력한 수상작 후보로 점쳐지는 이창동 감독의 '버닝'이 16일 오후 6시 30분 현지에서 공식 스크리닝을 통해 공개됐다. 영화가 끝나고 극장 안 조명이 켜지자 관객들은 일어서서 5분가량 박수세례를 보냈다. 몇몇은 휘파람을 불고 "브라보"를 외쳤다. 쏟아지는 갈채에 주연배우 유아인, 스티븐 연, 전종서의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했다.

현지 반응은 호평 일색이다. 티에리 프레모 칸영화제 집행위원장은 "관객의 지적 능력을 기대하는 시적(詩的)이고 미스터리한 영화"라고 했고 마이크 굿리지 마카오국제영화제 집행위원은 "칸에서 본 영화 중 최고였다. 최고의 연출력으로 최고의 연기를 끌어내 심장이 멈출 듯한 경험을 안겨줬다"고 했다. 영미권 온라인 영화매체 '아이온 시네마'는 평점 3.9점(4점 만점)을 주며 극찬했다. 이 매체가 올해 칸 경쟁작에 준 점수 중 가장 높다. 인디와이어 역시 평점 4.5점(5점 만점)을 줬고 프랑스 매체 파리마치는 만점인 5점을 주면서 "이야기가 갈수록 두터워지고 농밀해지면서 방향을 뒤튼다"며 "이 영화는 유력한 황금종려상 후보 중 하나"라고 했다.

택배 아르바이트를 하는 작가 지망생 종수(왼쪽)는 어릴 적 친구 해미가 소개한 낯선 남자 벤(오른쪽)의 얘기를 듣고 알 수 없는 불안을 느낀다.
택배 아르바이트를 하는 작가 지망생 종수(왼쪽)는 어릴 적 친구 해미가 소개한 낯선 남자 벤(오른쪽)의 얘기를 듣고 알 수 없는 불안을 느낀다. /파인하우스필름
영화는 절망한 청춘에게 카메라를 들이댄다. 종수(유아인)는 택배회사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작가가 되길 꿈꾼다. 우연히 어린 시절 동네 친구 해미(전종서)를 만난 종수는 곧 사랑에 빠진다. 해미는 종수에게 "고양이를 부탁한다"며 아프리카 여행을 떠나고 그곳에서 만난 벤(스티븐 연)과 함께 돌아온다. 종수는 두 사람과 함께 술을 마시며 나눈 이야기를 듣고 불안한 예감에 사로잡힌다.

영화 바탕이 된 무라카미 하루키 단편 '헛간을 태우다'가 해석의 여지를 겹겹이 심어놓았다면, 영화는 그보다 더 뜨겁게 이야기를 밀고 나간다. 포르셰를 몰고 근사한 집에서 파티를 여는 벤을 보며 종수가 "위대한 개츠비네"라고 한 말은 감독이 심어놓은 힌트다.

칸영화제에 참석한 ‘버닝’ 제작진. 왼쪽부터 스티븐 연, 전종서, 유아인, 이창동 감독.
칸영화제에 참석한 ‘버닝’ 제작진. 왼쪽부터 스티븐 연, 전종서, 유아인, 이창동 감독. /로이터 연합뉴스

영화는 직접적인 대사나 이야기보다 음악과 빛, 세밀한 공간 묘사로 관객 마음을 사로잡는다. 종수가 벤을 의심하고 미워하면서도 부러워하는 감정은 배경음악 리듬으로 변환돼 객석으로 쿵쿵 번진다. 그가 느끼는 불안감은 수런수런 들썩이는 드럼 소리였다가 뼛속까지 웅웅 울리는 북소리가 된다. 이 감독이 전작 '시'에서 음악을 완전히 배제한 것을 생각하면 새로운 시도다.

공간 대비도 흥미롭다. 복잡해서 터져버릴 것 같은 서울 한복판 종수와 해미의 방은, 고인 물처럼 차분한 벤의 집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은유를 품은 몇몇 장면은 대단히 시적이다. 종수 꿈속에서 비닐하우스가 맹렬히 불타오르거나 해미가 흥건한 노을 앞에서 갈대처럼 몸을 흔들며 춤추는 장면이 그렇다.

올해 칸 경쟁작은 총 21편이다. 예년보다 화제작이 많지 않다 보니 '버닝'에 대한 관심도 그만큼 높아지고 있다. 이창동 감독은 2010년 영화 '시'로 칸영화제 각본상을 받은 바 있다. 수상작은 19일 오후 발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