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8.05.22 23:44

프랑스 교포 2세 김기윤씨, 파리서 5년째 1인 스탠딩 쇼 공연
최고 엘리트 코스 밟아 로펌 입사… 친구 죽음 계기로 인생 궤도 바꿔

지난 5일 파리 시내 중심부의 한 공연장. 한국 걸그룹 원더걸스의 '노바디'가 흘러나오는 가운데 163석의 객석을 남녀노소 프랑스인이 거의 다 채웠다. 밝은 조명을 받으며 무대에 나타난 김기윤(38)씨가 "우리 엄마·아빠도 아닌데 이렇게 토요일에 많이들 공연 보러 와주다니 고마운걸"이라며 윙크했다. 관객들이 폭소를 터뜨렸다.

프랑스 파리에서 코미디언으로 활동하고 있는 김기윤씨의 공연 포스터.
프랑스 파리에서 코미디언으로 활동하고 있는 김기윤씨의 공연 포스터. /김기윤씨 제공
한국계 교포 2세인 김씨는 파리에서 5년째 '1인 스탠딩 쇼'를 하는 코미디언이다. 한 시간 동안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주거나 노래를 하는 1인극으로 웃음을 유도한다. 관객과 즉석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일주일에 2~3번씩 지금까지 250번쯤 공연했다.

파리 극장가에서 김씨가 돋보이는 이유는 걸어온 길이 색다르기 때문이다. 그는 파리2대학 법학과를 나와 명문 경영대학원 에섹(Essec),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다닌 파리정치대학(시앙스포)을 차례로 졸업했다. 프랑스에서 극소수 엘리트가 밟는 코스다. 변호사가 된 다음 손꼽히는 대형 로펌 '브르댕 프라트'에 들어가 기업 자문 변호사로 일했다. 2010년 전국 변호사 토론대회에서 우승했을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았다.

"저희 엄마, 한국 아줌마잖아요. 어릴 때부터 공부 많이 시켰고요. 제가 변호사 되기를 원하셨어요(웃음). 법학 교수였던 고모부(감사원장을 지낸 고(故) 이한기 서울대 명예교수) 영향도 받았고요. 막연히 법조인의 길을 갔던 것 같아요."

파리 대형 로펌의 변호사로 일하던 시절 김기윤(오른쪽에서 다섯째)씨가 동료들과 찍은 사진.
파리 대형 로펌의 변호사로 일하던 시절 김기윤(오른쪽에서 다섯째)씨가 동료들과 찍은 사진. /김기윤씨 제공
변호사 생활 5년째를 맞았을 때 가장 친한 친구가 급사(急死)하자 인생 궤도를 바꿨다. 김씨는 "저는 대형 로펌에서 일하고 있었고, 그 친구는 글로벌 투자은행에 다녀 겉으로는 화려했다"면서 "친구가 죽으니 다 부질없다고 느꼈다"고 했다.

재미있고 보람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어릴 적부터 말하는 걸 좋아해 무대에 서서 사람들을 웃겨보자 마음먹었다"고 했다. 로펌에 사표를 던지자 어머니 이명숙(64)씨는 석 달 동안 딸과 말을 끊었다. '어렵게 공부해 얻은 그 좋은 직장을 왜 그만두느냐'며 서운함을 표시한 것이다.

그러나 김씨는 새로운 인생을 발견했다. "남을 웃기고 그 반응을 보면서 저도 웃게 되니까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어요. 수입은 변호사 시절 절반도 안 되지만 상관없어요. 돈이야 꽤 벌어봤고 그게 인생에서 그렇게 중요한 건 아니더라고요."

김씨는 무대에서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꺼낸다. 어릴 적 중국인으로 자주 오해받았던 에피소드, 아들을 바랐던 한국식 집안에서 무남독녀로 자라며 겪은 성(性) 정체성 고민 등을 유쾌하게 풀어낸다. 저급하고 자극적인 말로 웃기지 않는다. 학창 시절 철학 공부를 제법 했던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대사들을 자주 구사한다. 파리마치 등 현지 언론들도 "변호사 출신이 펼치는 개성 넘치는 1인극"이라며 치켜세운다.

김씨에게는 '무대 유전자'가 있다. 성악가인 어머니가 오페라 무대에서 오래 활동했고, 고모도 성악가였던 김혜경(87) 서울대 명예교수다. 김씨는 프랑스식 이름을 쓰지 않고 '기윤(Kee-yoon)'으로만 살아왔다. 어머니 이씨, 파리에서 사업하는 아버지 김재경(70)씨와는 한국어로만 대화한다. 경영대학원 에섹 재학 시절 서울대에 1년간 교환 학생도 다녀왔다. 언제까지 무대에 오를 것인지 묻는 질문에 김씨는 "관객과 호흡하면서 느낄 수 있는 보람은 가능한 한 많이 누려야 하는 것 아니냐"며 활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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