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 한복판 화려한 매장 앞에 모델처럼 슈트를 차려입은 남자들이 환하게 웃으며 지나는 이들에게 말을 건다. "한번 들어와 보시겠어요?" 이 매장은 이탈리아 주얼리·시계 브랜드 불가리가 다음 달 3일까지만 문 여는 '불가리 세르펜티 하우스'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에 문을 연 팝업스토어‘불가리 세르펜티 하우스’에서 사람들이 보석과 시계들을 착용해보고 있다. /김지호 기자
매장에 진열돼 있는 건 적어도 몇백만원에서 몇천만원짜리 목걸이와 시계들이었다. 들어올 곳이 아니다 싶은 순간 "마음껏 착용해 보셔도 됩니다"라는 직원 목소리가 들렸다. 여느 럭셔리 매장 같으면 실크 장갑을 낀 직원들이 신줏단지 모시듯 꺼내 보였을 그런 제품들이었다. 백화점 명품관 유리관 속에 박제된 듯 들어 있던 보석과 시계들을 이곳에선 마치 서랍 속 연필을 꺼내듯 열어 볼 수 있었다.
목걸이를 꺼내 걸어보고 진열장에 붙어 있는 거울 같은 표지판에 '가격'이라 적힌 부분을 손가락으로 터치했다. 81,500,000이란 숫자가 뜬다. 8150만원짜리 장신구였다. 표지판에 카메라가 장착돼 있어 '8000만원짜리 인증샷'도 찍을 수 있었다. 이메일로 바로 전송도 된다. 매장을 돌아다니며 이 목걸이 저 시계를 차보며 사진을 찍어도 '능력 안 되면 나가주시죠'라는 무언의 눈길도, '안 살 거면 만지지 마세요' 하는 눈치도 없었다. 2층에는 미니 영화관도 있어, 미리 홈페이지에서 예약하면 '로마의 휴일' 같은 영화를 무료로 볼 수 있다. 팝콘과 음료도 준다. 불가리 관계자는 "브랜드 문턱을 넘기 어려워하는 소비자들이 편히 들러 즐길 수 있도록 계획했다"고 말했다. 전 세계에서 한국에만 있는 팝업스토어다.
서울 디뮤지엄에서 열린 몽블랑 전시회에서 관람객이 몽블랑 만년필로 예쁜 서체를 따라 써보고 있다. /몽블랑
백화점 명품관을 뛰쳐나온 럭셔리 브랜드는 불가리뿐 아니다. 프랑스 브랜드 까르띠에는 오는 24일까지 서울 청담동 K현대 미술관 1층에 '크리에이티브 팝업 부티크'를 열고 신제품인 '칵투스 드 까르띠에' 등 200여점을 선보이고 있다. 역시 무료 입장. 미술관의 다른 전시를 보다가 들러볼 수 있다. 역시 프랑스 보석 브랜드인 부쉐론은 31일까지 서울 강남구 갤러리아 이스트관 바로 앞 광장에 팝업스토어를 열고 관람하는 모습 사진을 즉석에서 무료로 출력해준다. 독일제 만년필 몽블랑은 서울 한남동 디뮤지엄에서 31일까지 몽블랑 펜으로 마음껏 써보는 캘리그래피(손글씨) 이벤트를 열고 있다. 디지털 시대에 손으로 써보면서 쓰고 읽는 것에 대한 가치를 높인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젊은 층이 당장 고객이 될 수는 없지만 대중적인 이벤트를 여는 건 결국 잠재 고객을 확보하기 위한 계산"이라며 "일부러 철벽을 쌓은 듯 고고해 보였던 과거 전략이 잠재 고객들에게 거부감을 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