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비극 깊이 읽기
최혜영 지음ㅣ푸른역사ㅣ424쪽ㅣ2만5000원
오이디푸스는 살부(殺父)의 운명을 거역하지 못한 비극적 인물이다. 프로이트가 이 고대 비극에 숨겨진 무의식적 의미를 찾아내면서 아버지로 대표되는, 기존 권위에 대한 전복적 욕망에 시달리는 남성들을 해방해 주었다. 이른바 그리스판 '막장 드라마'의 힘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비극은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신화(神話)적 공간에서만 벌어진 일은 아니었다. 오이디푸스의 공간적 무대인 테바이(테베)는 아테네와 실제 접경한 나라였으며, 아테네와 무수한 전쟁을 벌이며 원수로 지냈다. 저자는 '오이디푸스 왕'을 비롯해 '안티고네' '테바이를 공격하는 일곱 사람' 같은 무수한 비극이 하필이면 테바이를 무대로 쓰인 데 주목한다. 이는 아테네 사람이 갖고 있는 적개심의 산물(産物)이라는 것.
비극(tragedy)의 어원은 '염소(tragos)의 노래'다. 애초에 디오니소스 신에게 바치는 제물(염소)로 만든 노래였던 것. 책에 따르면, 신을 맞이하기 위해 만든 노래에 적국(敵國) 왕실 이야기를 다루다 보니 비극적 내용이 많아졌다. 테바이 외에 아르고스, 스파르타, 코린토스 같은 고대국가 배경의 비극들도 소개된다.
저자는 그리스 국가 장학금을 받고 그리스 이와니나 국립대학에서 수학했다. 그리스 문화에 열광했던 로마 황제 율리아누스에 대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에라스뮈스 장학생으로 영국 런던 킹스칼리지에서도 공부했다. 현재 전남대 사학과 교수. 서구 문화의 원형에 해당하는 그리스 비극의 기원을 실증적으로 다룬 저서가 번역서가 아니라 우리 학자의 저술이라는 점이 뿌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