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8.05.28 23:18

[성별 따라 다른 질환]

위식도역류질환·소화불량 대표적
여성, 신경성 많아 심리 고려해야

협심증의 경우, 男 가슴 통증 호소
女는 심한 피로·답답함 많이 느껴

성별에 따라 질병의 진단과 치료를 달리 해야 한다는 '성차의학'이 크게 주목받고 있다. 미국국립보건원(NIH)은 의생명과학 분야 연구 시 연구의 대상이 되는 사람·동물의 성별 차이를 고려하도록 하고, 성별 차이가 없을 시 그 이유에 대해 반드시 명시해야 한다는 내용의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지난 23일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젠더혁신연구포럼에서, 경희대 의대 생리학과 김영미 교수는 "성별에 따라 질병 진단이나 약물 효과 등의 임상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꾸준히 나오고 있다"며 "유럽연합이나 캐나다에서도 NIH와 비슷한 내용의 정책을 도입하고 있다"고 말했다.

◇女, 약 부작용·백신 접종 후 면역반응 심해

의료계에서 성별을 고려하지 않을 때 생기는 문제는 다양하다. 김영미 교수는 "1997~2000년 미국에서 치명적인 건강 문제를 일으켜서 판매가 중단된 10개의 약물을 분석한 연구 결과가 있다"며 "이 중 8개 약물이 남성보다 여성에게 더 치명적인 부작용을 일으켰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어 "이는 동물실험이나 임상시험 단계에서 성별을 변수로 고려하지 않았고, 임상시험 시 남성을 주 대상으로 했기 때문으로 분석됐다"고 했다. 미국에서 흔히 사용되는 약 668개 중 307개의 약에서 성별간 부작용 차이를 발견한 논문도 있다. 2015년에는 여성이 백신 접종 후 면역반응이 더 심하고 부작용을 많이 경험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질환별 남녀 차이
/사진=신지호 헬스조선 기자
◇성별 따라 증상 다른 대표적인 질환

지금부터라도 질병의 진단·치료 시 의료진이 환자의 성별을 고려해야 한다는 인식이 의료계에 확산되고 있다. 성별에 따라 증상이나 치료법이 달라질 수 있는 대표적인 질환은 다음과 같다.

▲위식도역류질환=위식도역류질환은 남성과 여성이 잘 걸리는 타입이 각기 다르다는 연구가 나왔다. 분당서울대병원 소화기내과 김나영 교수가 위식도역류질환이 있는 남성 20명과 여성 26명을 조사한 결과다. 김나영 교수는 "남성은 식도 점막이 헐어 있는 미란성이 많은 데 반해, 여성은 주로 점막의 변화가 없는 위식도역류질환을 겪는다"며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의 방어 능력 덕분에 여성은 염증 증세가 잘 나타나지 않고, 대신 기능성(신경성)으로 위식도역류질환이 나타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위식도역류질환으로 인한 삶의 질도 성별에 따라 다르다. 남성에 비해 여성 환자가 위식도역류질환으로 인한 수면장애·식이장애 같은 문제를 많이 겪어서, 삶의 질 점수가 낮다(남성 54.9점, 여성 44.7점).

▲소화불량=김 교수의 연구에서, 소화불량도 남녀간 차이가 있었다. 남성은 그렐린(위가 비었다는 신호를 전달해 식욕이 들게 하는 호르몬) 분비가 소화불량과 관련이 있었지만, 여성은 신경성·스트레스성 등의 이유로 소화불량을 겪었다. 만약 소화불량으로 인한 통증이 생기면, 여성이 남성보다 불안감과 우울감을 더 많이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 교수는 "이런 결과를 통해, 여성의 소화기질환 치료 시 심리학적·감정적 치료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뇌졸중=뇌졸중은 65세 미만에서는 남성에게 빈번하고, 65세 이후부터는 여성에게 더 많다. 또, 여성이 뇌졸중에 걸렸을 때 예후가 안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을지병원 신경과 이정주 교수는 "뇌졸중 사망률이 남성은 14%, 여성은 25%다"라며 "생존하더라도 여성은 인지 기능이 남성보다 더 떨어지는 경향을 보인다"고 말했다.

뇌졸중을 유발하는 요인에 있어서도 성별 차이가 있다. 똑같이 흡연해도, 흡연으로 인한 뇌졸중 위험은 여성이 남성보다 20% 더 높다. 당뇨병 역시 남성의 뇌졸중 위험을 2~3배 올리지만, 여성에게서는 최대 7배로까지 높아진다.

▲협심증=협심증의 경우 남성은 가슴 통증을 주로 호소하지만, 여성은 가슴이 답답하거나 숨이 차는 식의 양상을 보인다. 우울감·수면장애 같은 동반 증상도 여성에게 많다. 경희대병원 심장내과 우종신 교수는 "협심증 증상의 남녀 차이 때문에 여성 환자들은 자신이 심장병인지 모르고 지내다가 뒤늦게 치명적인 결과를 맞는다"며 "환자 수는 남성이 훨씬 많은데도 불구하고 여성 환자 사망률이 높은 것도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미국 심장학회에도 "여성들은 심장발작 한달 전에 극심한 피로, 불면증, 숨가쁨, 소화불량, 불안 등을 경험하는 경우가 많다"고 보고돼 있다. 남녀간 증상이 다른 이유는 아직 확실하지 않지만, 남성은 혈전(피떡)이 덩어리로 뭉치는 경향이 강하고, 여성은 혈전이 혈관벽을 따라 퍼져가는 특성이 있기 때문으로 추정한다. 우종신 교수는 "여성은 가슴이 답답하거나 속이 불편하면 단순히 화병으로 치부하지 말고, 한 번쯤 병원 검사를 받는 게 좋다"고 말했다.

▲편두통=성인이 되면 여성이 남성보다 3배 이상 편두통을 많이 겪는다. 이는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 때문일 것이라고 분석된다. 여성 편두통 환자의 60% 이상은 월경과 관련이 있는데, 월경기에 나타나는 편두통은 비월경기에 비해 두통 지속 시간이 길고 재발을 잘 하며 약제에 대한 반응이 낮다. 경구피임약을 복용하면 두통이 심해진다고 보고된 만큼, 여성 편두통 환자는 경구피임약 복용 시 에스트로겐이 저용량으로 든 약을 쓰는 등 의사와 상의 후 결정하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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