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죽이 척척 맞는 '더블'… 기 센 연기 보여드릴게요"

뮤지컬 '시카고'만큼 한결같이 사랑받는 작품도 드물다. 2000년 초연 뒤 18년, 이번이 14번째 시즌. 지난 13시즌 동안 961회 공연에 관객 94만명이 들었다. 지난 22일 개막한 공연엔 극의 주역인 여죄수 '벨마 켈리' 역에 배우 최정원(49)과 함께 음악감독으로 잘 알려진 박칼린(52)을 더블 캐스팅했다. 최정원은 시카고 전 시즌에 출연한 배우. 박칼린은 초연부터 8시즌 동안 음악감독을 맡았고, 배우로는 이번이 처음이다.

최근 연습실에서 만난 두 사람은 "거울에 비춰 보거나 공을 주고받듯 매일 상대에게서 좋은 점을 배운다. 우린 서로에게 완벽한 '더블(한 역할을 맡는 두 배우)'"이라고 했다. "처음 프로듀서 전화를 받고 '네, 지휘 맡을게요' 했다가 '네? 벨마를요?' 하며 깜짝 놀랐죠. '대(大)벨마 최정원'이 있는데 내가 방해되는 건 아닌가도 싶고…." 박칼린 말에 최정원이 손을 내저으며 웃었다. "'칼린 쌤'은 워낙 공연 전체를 완벽히 꿰고 있어요. 벨마가 처음 무대를 휘어잡는 '올 댓 재즈' 장면은 연기와 노래의 균형이 절묘한데, 첫날 첫 연습에서 완벽하게 '탁' 해내더라고요."(최정원) 두 사람, 오랜 친구처럼 죽이 척척 맞는다.

1920년대 범죄와 폭력의 도시 시카고, 불륜 현장에서 남편과 여동생을 죽이고 교도소에 온 벨마는 언론을 이용해 대중의 동정을 사서 석방을 노린다. 하지만 더 젊고 영리한 여죄수 '록시 하트'(아이비·김지우)에게 매번 기회를 뺏긴다. 최정원은 초연 때 록시로 시작했고, 2007년 공연부터는 쭉 벨마였다. 그는 "1998년 브로드웨이에서 처음 시카고를 봤을 때부터 난 늘 록시라고 생각했는데, 30대 중반이 되니 내 안의 벨마가 보이더라"고 했다. "아직도 제 성격은 록시에 가까워요. 좋으면 바로 표현하고 속상하면 바로 눈물이 나죠. 벨마는 후배 계집애 록시 때문에 모든 걸 잃지만, 그 과정에서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죠. 시카고는 '나를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준 여자로서도 정말 소중한 작품이에요."

박칼린은 "연기보다 춤이 새로운 도전이었다"고 했다. "얼마 전 제 생일에 엄마(리투아니아계 미국인)가 전화를 해선 '너 올해 쉰두 살이잖아. 춤 괜찮아?' 하시는 거예요. 한참 웃었어요. 원래 배낭 메고 만리장성도 주파할 수 있다고 장담할 만큼 지구력은 자신 있고, 이번 벨마 연기를 위해 근력도 30대 몸으로 끌어올렸어요." 그 얘기를 듣던 최정원이 "연습 기간 칼린 쌤 몸에서 벨마가 쓰는 근육이 올라오는 게 눈에 보일 만큼 열심히 몸을 만들더라"며 거든다.

박칼린에게 음악감독이나 연출가 본능이 불쑥 튀어나오는 순간들은 없을까. 박칼린은 "전혀 없다. 배우로서 내가 완벽하게 분리되는 게 스스로도 신기하다"고 했다. "음악감독이 요리 전체를 관장하는 셰프라면 배우는 단단한 두부가 됐든 순두부가 됐든 주어진 대로 찌개 속에 몸을 퐁당 던질 생각만 해야 돼요. '오케이, 주인 말 잘 듣는 강아지처럼 다음에도 시키는 대로 더 잘해야지' 생각하고, 그렇게 100% 충실해지는 게 너무 재밌어요."

두 사람은 "요즘 뮤지컬은 대부분 주연이 남자 배우들인데, 여자 두 명이 주인공인 것만으로도 시카고는 의미가 크다. 잘 만들어서 후배들에게 계속 물려주고 싶다"고도 했다. "여자는 나이 들며 경험한 만큼 깊어지고 기가 세져요. 그런 원숙한 벨마를 보여 드릴게요!" 공연은 서울 디큐브아트센터에서 8월 5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