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소설가 다비드 그로스만 '말 한 마리…' 등 이·팔 갈등 다뤄 "나는 소설이라는 세상을 창조… 그것은 뭔가를 바꿀 강력한 잠재력"
전쟁과 평화가 교대하며 인간의 역사를 구축해 왔다면, 문학은 내내 한 번도 끊긴 적 없는 울음일 것이다. 이스라엘 소설가 다비드 그로스만(64)은 그 복판에서 터져 나오는 울음소리를 채록하고 있다. 건국 70주년을 맞은 그의 조국은 계속 영토 분쟁을 벌이고 있고, 지난 14일 주이스라엘 미국대사관의 예루살렘 개관에 항의하는 팔레스타인 시위대를 공격해 수십명의 사상자를 내 도화선에 다시 불이 붙었다. 평화운동가이자 지난해 맨부커 인터내셔널 수상으로 이름을 널리 알린 그와 전화로 만난 지난 28일에도 이곳에선 굉음이 터졌다. 그는 예루살렘 근처 소도시 메바세레츠 시온(Mevaseret Zion)에 살고 있다.
이미지 크게보기다비드 그로스만은 “카프카, 버지니아 울프 같은 작가를 좋아하고 영향받았다”고 말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현지 분위기는 어떤가?
"큰 동요는 없다. 오랫동안 지속된 상황이다. 그래도 비무장 민간인에 대한 공격은 용납될 수 없다. 누구도 이 같은 반복에 변화를 주지 못하고 있다는 게 안타깝다."
팔레스타인 출신 어머니, 폴란드에서 이주해 온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그로스만은 조국의 극우적 행태를 비판하는 평화운동가로 유명하다. 2010년 독일 '평화상' 수상 당시 그는 "오직 평화만이 이스라엘에 미래를 안길 것"이라 말한 바 있다.
―평화가 가능할까?
"지금 상황에 무척 화가 나지만, 평화가 삶을 가능케 함은 변치 않는다. 유대인의 비극은 역사 내내 있어 왔다. 그건 살아남기 위한 삶이었다. 그걸로는 충분치 않다. 평화만이 삶에 의미와 인간성을 부여한다. 평화가 가능하다고 믿어야 한다. 런던이나 로마에서 초청도 받았고, 평화로운 곳으로 떠나 살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곳은 내 고향이고, 내 언어가 있는 곳이다."
소설·논픽션 등 작품 전반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을 다룬다. 국내에도 그의 소설 5권이 소개돼 있고, 이 중 '사랑 항목을 참조하라', '나의 칼이 되어줘', 맨부커 수상작 '말 한 마리가 술집에 들어왔다' 세 권이 최근 잇따라 출간됐다. 특히 스탠드업 코미디언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질펀한 농담으로 현지의 고통을 폭로한 '말 한 마리…'의 문체에 대해선 "어떤 이야기는 농담을 이용할 때 더 강력한 전달력을 지닌다"고 말했다.
―뭘 전달하고 싶은가?
"나는 가치가 아니라 스토리를 전달할 뿐이다. 전쟁은 다양한 층위에서 인간에게 큰 도전을 안긴다. 내가 집중한 것은 전쟁 자체가 아닌 사랑, 인간성에 대한 것이다." 그는 프랑스 문화예술공로훈장 등 국제 유수의 상을 받았고, 지난달 이스라엘상(賞) 문학 부문 수상자로 선정됐다.
―문학이 분쟁을 해소할 수 있나?
"문학이 전쟁을 멈출 순 없다. 그래서 나는 소설이라는 세상을 창조한다. 이야기는 다른 세상을 상상케 한다. 그것은 뭔가를 바꿀 강력한 잠재력이다." 그러나 현실은 훨씬 잔인하다. 2006년 레바논과의 전쟁 당시 그는 전쟁의 외교적 해결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틀 뒤, 군복무 중이던 아들이 전사했다.
―슬픔이 문학으로 위로가 됐나?
"아니. 그 재앙은 내 삶을 바꿔놨다. 다만 상실에 대해 쓰면서 나는 현실에서 도망치지 않을 수 있었다." 울음 속에서 그는 아들을 전쟁터에 보낸 어머니의 고통을 그린 '땅끝까지'를 2년 뒤 완성했고, 3년 뒤 자식 잃은 부모들의 슬픔을 형상화한 '시간 밖으로'를 펴냈다. "끔찍한 일을 통과한 인간이 어떻게 삶으로 돌아오는지, 도망치지 않고 그 자리에 존재하는지 문학이 알게 해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