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갓 입사한 초년생이나 20여 년 이상의 중견 사원이나 누구나 한 번쯤 상사와 의견 차이로 충돌과 갈등을 경험할 것이다. 한 예로 일주일 내내 밤을 꼬박 새워 작성한 보고서를 제출한 부하직원은 내심 “잘 마무리했구나”라는 상사의 격려를 기대할 것이다. 그러나 상사의 입에서 나온 말은 기대와 너무나 다른 질책의 말이었다. 보고서를 보고 앞뒤 문맥도 안 맞고 내용 연결도 없고 두서없이 마음대로 만들었다는 질책이 돌아왔다. 중간보고 때만 하더라도 아무 말이 없다가 마무리 시점에서 이런 얘길 듣는다면, 부하직원은 가슴속에서 심한 모멸감이 솟구쳐 오면서 정말 훅이라도 한 대 날리고 싶은 심정일 것이다.
당찬 신입사원이라면 상사에게 중간보고에는 별다른 언급이 없다가 마무리 시점에 이렇게 얘기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과감하게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 세월이 흘러 소위 말하는 중견 사원의 나이로 접어들면 초기의 당당함과 자신감이 사라지고 오히려 자신의 잘못이라며 다시 작성하겠노라고 고개를 90도 숙이는 소위 말하는 예스맨으로 전락하게 된다.
이런 태도가 반드시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직장 생활에 있어서 상사와의 관계는 그만큼 어려운 관계임을 반증한다. 한편으로 보면 겸손의 미덕으로 보이기도 한다. 멀리는 우리 할아버지, 가까이는 우리 아버지 세대만 하더라도 어떤 행동에 있어서 결과가 좋지 않으면 모든 게 내 탓이라고 했던 시절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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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이성적 동물이라는 선인의 말이 있지만, 개인적으로 공감하지 않는다. 25년간 직장 생활을 해본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인간은 이성적이라기보다 오히려 감정적 동물이다. 중‧고등학교부터 대학시절까진 시험이라는 장치를 통해서 객관적인 평가의 잣대를 만들 수 있다. 즉, 1등부터 꼴찌까지 줄을 세울 수 있고, 1등을 가장 우수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발을 담그는 순간부터 현실적으로 객관적인 서열을 측정하기가 매우 어렵다.
물론 직장에서는 고과라는 것을 통해서 평가의 기준을 세우지만, 그 기준도 지극히 주관적인 요소를 많이 내포한다. 학창시절처럼 시험을 치러 1등을 한 부하직원에게 가장 높은 고과를 주는 것이 아니라 부하직원의 태도와 상사에 대한 충성이 가장 중요한 평가의 기준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상사와의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직원이 업무적으로 뛰어난 직원보다 더 인정받는다. 이렇다 보니 어떤 이성적인 기준보다 얼마나 상사에게 열과 성을 다하느냐가 종종 평가의 잣대가 된다.
현시대를 살아가는 직장인들은 오늘도 상사에게 더욱 더 열과 성을 다해 직장생활을 한다. 대한민국의 직장인은 비록 상사에게 일부 비합리적인 부분이 있더라도 참고 상사의 의중에 맞추어 일을 처리하는 것 같다.
하지만 위와 같은 상사와 부하직원 간의 관계를 부부 사이에 적용했을 땐 정말 이상적인 부부 생활이 될 수 있으리라 본다. 대부분 부부싸움의 불씨는 상대방에 대한 막말이 그 원인을 제공한다. 만약 상대가 회사상사라면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도 한 번 더 참자고 스스로 다짐하면서 속에 있는 마음을 잘 드러내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회사에서의 인내가 퇴근 후 아내와의 대화에서는 사라진다. 아내가 나에게 조금이라도 듣기 거북한 말을 했을 때, 드디어 기회가 왔다며 거침없이 험한 말을 쏟아낸다. 아내도 이성에 앞서 감정적 동물이기에 남편의 사소한 말 한마디가 부부 사이를 극한으로까지 몰아넣는다. 대한민국 직장인은 아내를 직장상사 대하듯 공손하고 깍듯이 대하면 더욱 원만하고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데 많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