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제와 거꾸로 가는 한국, 곳곳서 경기 침체 경고 신호 소비·투자 동반 하락… 4월 제조업은 전달 대비 1.5% 반등
우리 경제가 침체 국면으로 가고 있다는 경고 신호들이 곳곳에서 터져나오고 있다. 31일 정부 산하 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올해 하반기 경제성장률이 2.8%에 머물 것이며, 내년에는 성장률이 2.7%까지 떨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KDI는 특히 수출을 제외한 소비, 투자, 생산 등 경제지표들이 죄다 하반기부터 증가세가 둔화되거나 심지어 마이너스 성장을 할 것으로 봤다. 보통 정부와 경기 시각을 공유하는 KDI가 이렇게 비관적인 전망을 낸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KDI는 이날 발표한 '상반기 경제 전망' 보고서에서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2.9%(상반기)→2.8%(하반기)→2.7%(내년)로 점차 떨어질 것으로 봤다. 성장에 점점 가속도를 붙여가고 있는 세계경제와는 상반된 모습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세계경제가 올해 3.8%, 내년 3.9% 성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KDI는 수출을 제외한 대부분 경제활동이 갈수록 둔화할 것으로 전망했다. 민간 소비는 자산 가격 상승과 일자리 관련 정책효과 등으로 올해 2.8% 증가한 뒤 내년에는 증가율이 2.6%로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KDI는 "소비는 늘어나고 있지만 해외 소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2017년을 기점으로 늘어나면서 내수 경기의 영향을 받는 서비스업 회복이 지지부진하고, 경제 심리를 반영하는 물가도 오르지 않고 있다"고 진단했다.
작년 반도체 투자 증가 덕에 두 자릿수 증가세를 보였던 설비투자는 올해 3.5%, 내년 1%로 증가세가 대폭 꺾일 것으로 전망했다. KDI는 "중국의 제조업 성장과 반도체 경기 조정 등 위험 요인이 부각되면 투자 둔화세가 빨라질 위험이 있다"고 했다. KDI는 정부의 강력한 부동산 규제에 따라 건설 투자는 올해 -0.2%, 내년 -2.6%로 뒷걸음질 칠 것으로 봤다.
고용 사정 역시 당분간 나아지기 어렵다는 게 KDI의 진단이다. KDI는 올해 취업자 수 증가 폭을 '20만명 중반'으로 예상해 지난해 12월 내놨던 전망치보다 5만명이나 낮춰 잡았다. 내년 취업자 수 증가 폭은 20만명대 초반으로 그칠 것으로 봤다. 인구구조 변화 요인이 있다지만 이전까지 우리 경제는 매달 취업자가 30만명 안팎 늘어나는 것이 정상이었다. KDI는 "산업 간 불균형 성장, 고용 창출력 약화 등에 대응해 구조 개혁 노력이 지속되지 못하면 우리 경제의 경쟁력과 활력 저하는 불가피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통계청이 내놓은 '4월 산업활동 동향'에 따르면 향후 경기 국면의 전환점을 예측하는 지표로 쓰이는 선행종합지수 순환 변동치는 전달보다 0.4포인트 떨어져 3개월 연속 하락했다. 통계청은 "선행지수가 3개월 연속 하락한 것은 (경기 전망이) 부정적이라는 신호"라며 "6개월 연속 하락하면 경기가 꺾였다는 신호로 보기 때문에 좀 더 지켜볼 것"이라고 밝혔다.
생산·소비·투자 등 3대 경제지표 중에서는 소비와 투자가 동반 하락했다. 전달까지 3개월 연속 증가세를 보였던 소비(소매 판매)는 전달 대비 1% 감소로 돌아섰고, 설비투자는 3.3% 감소해 2개월 연속 하락세를 이어갔다.
그나마 3월에 급락했던 제조업 생산이 반등한 것은 위안거리였다. 전 산업생산은 반도체와 자동차 등의 선전에 힘입어 전달 대비 1.5%의 비교적 큰 폭으로 증가했다.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최저로 떨어졌던 제조업 가동률도 2.2%포인트 반등해 72.5%를 기록했다. 그러나 산업생산 증가와 이에 따른 제조업 가동률 상승은 반도체(9.9%)와 자동차(6.7%) 업종의 회복세에 대부분을 의존한 것이고, 내수 회복의 지표인 서비스업은 4월에도 사실상 제자리걸음을 했다.
하준경 한양대 교수는 "경기 순환을 보면 하강 국면으로 가고 있다는 진단도 가능하지만, 작년을 기점으로 생산 가능 인구가 줄어들기 시작하면서 그 충격이 경제 활기를 저해하는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봐야 한다"고 했다. 하 교수는 "결국 경제 전체의 생산성을 높여야 하고, 특히 기업들이 혁신과 신산업 개척을 통해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일이 시급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