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8.06.01 01:10

[기업 떠난 '군산의 눈물'] [中] GM공장 폐쇄, 직원들의 하루

31일 오후 전북 군산 GM 공장 정문으로 직원들이 드문드문 나왔다. 혼자 온 사람도, 두세 명 짝을 지어 온 사람도 있었다. 이날 공식 폐쇄를 맞아 남은 개인 서류와 짐을 가방에 담아 나왔다. 한 직원은 정문 왼쪽 벽에 새겨진 'GM KOREA COMPANY' 문구를 휴대전화 카메라에 담고선 한참을 들여다봤다. "이제 다시 못 올 것 같아 기념으로 찍었다"고 했다.

"아저씨,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종종 놀러 올게요." 한 직원이 꾸벅 고개를 숙였다. 검은 장갑 낀 손으로 나가는 직원을 향해 일일이 손을 흔들던 경비원이 보였다. 기자가 다가가 말을 붙였지만, 경비원은 단 한 마디 하지 않았다. 모자를 푹 눌러 쓴 얼굴은 계속 굳어 있었다. 직원이 나올 때만 활짝 웃었다.

31일 전북 군산시‘군산고용복지플러스센터’에서 실업급여를 처음 신청하려는 사람들이 줄을 서서 직원과 상담하고 있다.
실업급여 창구 늘어선 줄 - 31일 전북 군산시‘군산고용복지플러스센터’에서 실업급여를 처음 신청하려는 사람들이 줄을 서서 직원과 상담하고 있다. 요즘 실업급여 신청자 중에는 한국GM 군산공장 폐쇄로 일자리를 잃은 협력업체 직원이 많다. /김영근 기자
직원들의 표정이 어둡지만은 않았다. 1997년 대우자동차 시절 입사한 백승진(49)씨는 "계속 처져 있을 수는 없지 않으냐"며 살짝 웃어 보였다. 그는 대기발령 상태다. 사무실을 나오면서 "안녕히"라고 혼잣말을 했다. 약 20년 일한 회사에 미련이 없을 순 없다. 백씨는 "어쩌면 다시 올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사물함에서 짐을 다 안 빼고 조금 남겨 두고 나왔다"고 했다.

공장 문을 걸어 잠그는 특별 행사 같은 건 없었다. 공장 안쪽은 텅 비어 있었다. 게시판에 붙은 '일일 확인 시트'의 마지막 날짜는 2017년 12월 14일이었다. 근로자들은 매일 아침 '안전 보호구를 착용했는지' '작업장 위해 요소를 확인했는지' 등을 묻는 이 시트에 체크한 후 하루 일을 시작했었다.

GM 공장 폐쇄가 안타까운 건 직원만이 아니다. 지역 대표 기업을 잃은 군산 시민들도 마찬가지다. 이날 정문엔 몇몇 시민들이 공장의 마지막 모습을 보겠다며 찾아왔다. 군산공장에서 차로 5분 거리인 오식도동 상가. 2~3년 전만 해도 퇴근길에 GM 관련 업체 직원들이 회식을 위해 찾던 곳이었다. 갈비집을 운영하는 고상우(55)씨는 식당에서 음식재료를 손질하고 있었다. 그는 "이 동네가 흙밭일 때 개업해서 꽤 오래 GM 직원들을 봐왔는데…"라고 했다. 택시운전사 이정명씨는 "하루에 몇 차례씩 군산공장을 오갈 때도 있었는데, 문을 닫는다는 사실이 아직 믿기지 않는다"고 했다. 나운동의 한 편의점 주인(30)은 "매일 아침 GM 통근버스가 가게 앞에 섰다. 담배나 음료를 사가던 분들 얼굴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GM에서 일했던 2000여명은 다른 모습으로 군산공장 폐쇄 마지막 날을 보냈다. 공장에서 13년간 일한 이정열(48)씨는 군산항 연안여객터미널 1부두 컨테이너 야적장에서 컨테이너 분류 일을 하고 있었다. 지난 2월 해고 통보를 받고 5월 초 지인의 소개로 이곳에 취업했다. 그는 "군산에 오래 살았지만 바다하곤 인연이 없었다. 새로운 분야를 배우는 재미가 있다"고 했다.

군산공장 출고장에서 일했던 이민구(60)씨는 택시 운전대를 잡고 있었다. 지난해 7월 퇴직 후 바로 택시 면허와 대형 면허부터 취득했다. 그는 "이번에 희망퇴직을 신청한 동료 중에 택시 일이 어떠냐고 물어보는 사람이 꽤 많다"고 했다.

6년 동안 군산공장에서 일했던 김주영(38·가명)씨는 어제 밤샘 근무를 마치고 집에서 쉬는 중이었다. 지난 2월 공장에서 나온 후 최근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일을 시작했다. 격일제 근무로, 오전 8시부터 다음 날 오전 8시까지 24시간을 일한다. "아내가 3년 전부터 간호대학에 다니고 있다. 아내 졸업 때까진 혼자서 어떻게든 버텨야 한다"고 했다.

아직 일을 찾지 못한 이들은 '군산고용복지플러스센터'에 모인다. 실업급여를 받기 위해 상담과 교육을 받는다. 센터 출입문 앞에서 30~50대 남성 대여섯 명이 모여 이야기를 나눴다. GM 협력업체에서 같은 날 퇴직한 후 우연히 마주친 것이다. 이들은 "반장님" 등 예전에 부르던 호칭으로 서로를 불렀다. 교육을 받고 나온 사람들은 채용 공고가 붙은 게시판을 유심히 바라봤다. 게시판 앞쪽에 놓여 있던 공고문 40여장은 20분 만에 동났다. 15년간 자동차 부품을 만들었다는 신기현(48)씨는 "이 나이에 일자리를 다시 구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남편이 실직한 후 평생을 가정주부로 일해온 엄마들은 생계 전선에 뛰어들었다. 김민정(48·가명)씨는 창업 수업을 듣고 있다. 남편 뒷바라지를 하며 중학교 3학년 딸과 초등학교 6학년 아들을 키웠다. 김씨는 "바깥일을 해본 적이 없지만 앞으로는 남편과 맞벌이를 해야 할 것 같다. 뭐라도 배워놓으면 취업할 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고 했다.

반대로 일자리를 잃은 남편은 아내를 대신해 아이를 돌본다. 17일 오후 군산의 한 초등학교 앞. 30~40대 부모 10여명이 아이들이 수업을 마치고 나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대부분 엄마지만 아빠도 서너 명 섞여 있었다. 한 여학생이 "아빠!" 부르며 달려오자 정문 옆 벤치에 앉아 있던 백도윤(42·가명)씨가 벌떡 일어나 딸을 꼭 안아줬다. 그는 2016년 말 현대중공업 철수를 앞두고 협력업체에서 해고됐다. 요즘엔 오전엔 아르바이트를 하고 오후엔 딸 숙제를 봐준다. 이 학교 안전지킴이로 일하는 최종관(70)씨는 "방과 후 수업이 끝나는 시간에 맞춰 오는 아이를 데리러 오는 아빠들이 요즘 많이 늘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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