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수 대법원장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확산에 대국민 사과 "판사 고발 여부, 법관대표회의 등 각계 의견 종합해 최종 결정"
김명수 대법원장이 31일 전임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의 '재판 거래 의혹' 등 사법행정권 남용 논란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이 의혹을 조사한 대법원 특별조사단은 지난 25일 "양 전 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정권에 우호적인 판결을 선별해 청와대와 협상 카드로 활용하려는 문건을 만들었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후 문건에 등장한 판결 당사자들이 대법원 판결에 불복하며 대법정을 점거하는 등 혼란이 이어졌다.
31일 오후 김명수 대법원장이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퇴근하며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김 대법원장은 이날 법원행정처의‘재판 거래 의혹’을 두고“관련자에 대한 형사 조치는 신중할 수밖에 없다”며 최종 결정을 뒤로 미뤘다. /연합뉴스
김 대법원장은 이날 오후 발표한 대국민 담화문을 통해 이 파문과 관련해 국민에게 사과하면서 관련자에 대한 형사 조치는 각계 의견을 종합해 결정하겠다고 했다. 그는 "최종 판단을 담당하는 대법원이 형사 조치를 하는 것은 신중할 수밖에 없다"며 "(대법원) 사법발전위원회, 전국법원장간담회, 법관대표회의 및 각계 의견을 종합해 관련자들에 대한 형사 조치를 최종적으로 결정하고자 한다"고 했다. 이 사건의 최대 쟁점이 된 '양승태 행정처' 근무 판사들의 고발 문제에 대한 결정을 뒤로 미룬 것이다. 그동안 이를 두고 "고발해야 한다"는 주장과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이 법원 내부에서 엇갈렸다. 판사 간에 진영 대결 양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전국법원장간담회는 오는 7일, 법관대표회의는 오는 11일 열린다. 그때까지 또 혼란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 사태는 김명수 대법원장이 자초한 측면이 크다. 앞서 특별조사단은 "사법행정권 남용은 있었지만 형사적으로 문제 삼기 어렵다"고 결론을 냈다. 행정처 일부 판사들이 이미 선고된 재판들로 청와대와 협상을 시도하려는 아이디어를 내긴 했지만 사전에 재판에 관여한 정황은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행정처가 관여해 정권에 유리한 재판 결과를 냈다는 의미의 '재판 거래'는 없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김 대법원장은 "고발을 검토할 수 있다"며 조사단 판단을 뒤집었다. 이후 '재판 거래'가 실제 있었던 것처럼 받아들여져 법원 내부 갈등은 증폭됐다. 그래 놓고 또 결정을 미룬 것이다. 법원장 출신 변호사는 "나름의 고민은 있겠지만 사법부 수장으로서 너무 무책임하다"고 했다.
법원 내에선 김 대법원장이 고발 수순을 밟을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김 대법원장이 의견을 듣겠다는 대법원 사법발전위원회는 그가 취임 후 만든 위원회다. 법관대표회의도 그가 회장을 지낸 진보 성향 법관 모임인 우리법연구회와 국제인권법연구회 회원들이 주도하고 있다. 법관대표회의 의장인 최기상 부장판사는 전날 "헌정 유린 행위 관련자들에 대해 엄정한 조치를 취할 것을 촉구한다"며 김 대법원장에게 검찰 고발을 요구했다. 김 대법원장이 이런 회의를 통해 검찰 고발을 위한 동력을 얻고, 나중에 그에 따른 책임도 분산하기 위해 '각계 의견 수렴' 카드를 꺼내 들었다는 것이다. 한 판사는 "김 대법원장이 마음에 드는 결론이 나올 때까지 각종 위원회나 회의체를 돌리겠다는 뜻으로 보인다"고 했다.
한편 김 대법원장은 행정처 개편 방안도 밝혔다. 그는 "대법원을 운영하는 조직과 사법행정을 담당하는 행정처의 조직을 완전히 분리하고, 행정처를 (같은 건물을 쓰는) 대법원 청사 밖으로 이전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하겠다"고 했다. 이어 "법관 독립 침해 시도에 대응하기 위해 법관독립위원회를 설치하고, 사법행정 담당자가 지켜야 할 윤리 기준도 구체화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