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연기論 같은 건 없어요… 관객이 숨 쉴 틈 만드는 기술은 있죠"

성동일(51)은 스스로를 "숨구멍 기술자"라고 했다. "연기론? 배우론? 난 그런 거 없어요. 열연 같은 건 못 해요(웃음). 내가 할 줄 아는 건 극이 흘러갈 때 관객이 숨 쉴 틈을 만드는 정도랄까… 무슨 캐릭터에 몰입하고 어쩌고 그런 건 잘 모르겠고, 기분과 상황 따라 움직이는 것 정도 할 줄 안다고 해야 하나? 그 덕에 자식 셋 밥 먹일 수 있으니 기술치곤 나쁘지 않은 거죠." 지난주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였다. 그가 말을 멈추더니 두 손으로 얼굴을 문질렀다. "괜찮은 말을 다 해버렸는데 이제부턴 무슨 얘기를 털지?" 자리에 있던 이들이 순간 '와' 하고 웃었다. 숨구멍이 터진 듯했다.

성동일은 13일 개봉하는 영화 '탐정: 리턴즈'(감독 이언희)에 권상우와 함께 미제 사건을 쫓는 탐정 노태수 역으로 나온다. 반백의 머리칼, 졸음이 깨지 않은 듯한 표정, 귀찮은 듯 느슨한 걸음걸이. 영화에서 권상우가 "당장 가보자"면서 이야기를 들썩이게 한다면 성동일은 반대로 "인마, 말이 되냐?"면서 일단 주저앉는 쪽이다. 성동일은 "실제 내 모습도 태수와 닮은 부분이 많다"고 했다. "대책 없이 열심히 하는 대배우는 못 돼요. 직장인처럼 하는 거예요. 좀 일찍 나오고, 미리 맞춰보는 거죠. 일해서 돈 받으면 그걸로 소주 사먹고 아이들 피자 사주고(웃음). 좋은 연기자보단 그저 좋은 아빠, 좋은 선배가 되고 싶었고, 그래서 지금도 일하는 거죠."

인천 부평 출신이다. 어머니는 포장마차 하면서 자식 셋을 키웠다. 성동일은 어려서부터 "스스로 알아서 커야" 했다. 아버지는 살아생전 종종 손찌검을 했다. 최근 한 방송에서 "사생아처럼 자랐고 아버지 임종 소식을 듣고도 미움이 커서 장례식장에 못 갔다"고 고백한 적도 있다. 대학교 2학년 무렵 우연히 알게 된 연극이 그를 바꿔놓았다. "단역 하나를 어떻게 맡아 무대에 올라갔는데 그 컴컴한 곳에서 다들 내 입만 바라보고 있더라고. 난생처음이었어요, 누가 날 그렇게 쳐다봐준 건. 내게 관심 가져준 건…." 1년에 120만원쯤 벌었지만 그래도 좋았다. 선배들에게 맞아가며 발성을 익혔고 호흡을 배웠다. 마이크를 켜놓은 듯 또렷하고 울림이 큰 특유의 목소리도 연극 무대에서 얻은 것이다. 성동일은 "너무 가난해서 6월 직전까진 털 빠진 오리털 파카 하나 입고 지냈고 겨울 되기 전까진 반팔 티셔츠 하나 입었다. 지금은 사계절 옷이 다 있으니 얼마나 고맙냐"고 했다.

쉬지 않고 영화·드라마·예능에 출연한 지 30여년. 누구는 '이미지 변신이 없다'고 하고, 누군가는 '너무 다작을 한다'고 했다. 성동일은 "직장인이 직장 열심히 다니고, 대학생이 학교 열심히 다니는 게 뭐가 문제냐. 배우는 누가 뭐래도 계속 연기를 해야 한다"고 했다. "소위 톱이라는 후배 연기자들에게 그래요. '너 쉬면 뭐 할 건데. 딱 맞는 캐릭터? 너한테 딱 맞는 캐릭터가 어디 있어? 네가 맞추는 거지.' 능력 안 되면 꾸준하기라도 해야죠."

그는 촬영 내내 스태프들을 술자리에 불러 모으는 걸로도 유명하다. "인생 뭐 있어요? 내가 열심히 번 돈으로 술 사먹고 안주 사먹을 수 있으면 된 거 아녜요? 그게 사는 맛인데요." 성동일이 다시 숨구멍 터지듯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