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8.06.04 01:32

[판을 바꾼다] [4] 김용범 CJ E&M 책임PD

음악 예능 새 포맷 끊임없이 개발, 케이블서 오디션 프로 대성공시켜
'악마의 편집' 논란도… "왜곡은 없어"
15일 韓日합작 '프로듀스 48' 첫선

"TV 다음이 뭐가 될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프로듀스101'이나 '슈스케'(슈퍼스타K)도 과거다. 새 포맷을 끊임없이 생각하지 않으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

케이블 음악 채널 엠넷의 서울 상암동 '엠카운트다운' 프로그램 녹화장 앞에는 유럽과 아랍권 국가에서 찾아온 음악 팬들로 북적인다. 김용범(43) CJ E&M 책임PD(국장)는 이들을 볼 때마다 등골이 오싹한다. 자신이 만든 프로가 디지털 공간에서 증폭되고, 소문을 타며 예상치 못한 효과를 만들기 때문. 그는 "앞으로 우리가 경쟁해야 할 곳은 디지털 기술로 국경이 사라진 글로벌 공간임을 매번 깨닫는다"고 했다.

‘슈퍼스타K’‘프로듀스101’ 등을 히트시키며 음악 프로그램의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낸 김용범 PD가 서울 상암동 CJ E&M 센터 1층 로비에서 웃고 있다.
‘슈퍼스타K’‘프로듀스101’ 등을 히트시키며 음악 프로그램의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낸 김용범 PD가 서울 상암동 CJ E&M 센터 1층 로비에서 웃고 있다. /성형주 기자

김 PD는 2009년 '슈스케'로 국내 처음 경연형 예능을 성공시키며 케이블TV 사상 최초로 18%대 시청률을 거머쥔 인물이다. MBC '나는 가수다', KBS '불후의 명곡'을 '슈스케'의 아류로 만들었다. 책임PD가 되어서도 후배 PD들과 함께'프로듀스101', '고등래퍼' 등을 연달아 히트시키며 음악 프로그램의 '판'을 바꾸고 있다. 오는 15일에는 한국과 일본에서 동시 방송되는 '프로듀스 48'을 시작한다. '프로듀스101'과 상설 공연장에서 아이돌을 육성하는 일본의 'AKB48'을 결합한 포맷으로, 96명의 한·일(韓日) 참가자들이 첫 방송부터 실력을 겨룬다. 김 PD는 "관객이 직접 선발한 아이돌 그룹을 만들기 위해 방송과 인터넷에 바이럴(소문)까지 결합한 포맷"이라고 했다.

멈출 줄 모르는 혁신의 비결이 뭐냐는 질문에 김용범은 망설임 없이 "노가다(막노동)"라고 외쳤다. 실제로 그는 촬영 때마다 짧은 영상물(디지털 포맷)을 따로 만들어 퍼뜨리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지난해 '프로듀스101'에서 최종 경쟁자들이 시청자 한 명 한 명을 바라보는 듯한 '아이 콘택트(eye contact) 직캠'을 제작한 것이 대표적이다. 그는 "강 다니엘의 인기는 이 직캠 효과를 빼놓고 설명할 수 없다"고 했다. 김 PD는 "공연 때마다 팬들이 직접 찍어 올린 영상이 수두룩하다. 우리는 이들 영상과도 경쟁해야 한다"고 했다.

'악마의 편집'이란 비판도 받았다. '슈스케'를 찍을 때도 공연이 10시간이면, 그보다 10배 분량의 무대 뒷이야기와 일상 화면을 찍은 뒤 이를 편집해 서사를 만들었다. '슈스케 시즌2'에선 재미교포 존박과 환풍기 수리공 허각으로 팬들의 지지가 묘하게 갈리기도 했다. 그는 "편집이 빠르고 감각적이라 '악마가 아니고선 이렇게 못 한다'는 말을 칭찬으로 들었는데, 나중에는 스태프나 출연진을 희생시켰다는 뜻으로 이해하는 분들도 계셨다"면서 "안타깝지만, 나는 열심히 했을 뿐 사실을 왜곡한 것은 없었다"고 했다.

망해가던 '고등래퍼'에 긴급 투입돼 시즌2를 흥행시킨 일화도 유명하다. 고등학생들이 성인 랩퍼를 따라 했던 시즌1과 달리, 시즌2는 청소년들의 고민을 담는 것으로 콘셉트를 바꿨다. 서울대 다니는 누나에게 느끼는 열등감, 부모의 이혼 이야기 등을 담은 시즌2 출연자들의 랩은 순식간에 음원 차트 상위권을 장악했다.

김용범은 "생존 본능"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케이블 PD들은 지상파와 달리 열악한 환경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헝그리 정신' 빼고 나면 없다. 끊임없이 새로운 걸 추구할 수 있는 이곳이야말로 나의 터전"이라고 했다. 지상파를 포함해 여러 곳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있었지만 가지 않은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