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8.06.04 03:00 | 수정 : 2018.06.04 10:31

주민들 "구청, 보름전 외벽 부풀어 오른것 보고도 조치 안해"
1층 식당은 평일 100명 줄서… "주말 영업 안해, 하늘이 도왔다"
52년된 벽돌·시멘트 건물… 건물주 등 3명 외출하며 禍 면해

3일 서울 용산역 앞에 있는 4층짜리 건물(연면적 301.49㎡)이 낮 12시 35분쯤 폭삭 내려앉았다. 1~2층엔 식당이 있고, 3~4층에 4명이 거주하던 건물이었다. 사고 당시 주말이라 식당은 영업하지 않았고, 4층 거주자 1명만 건물 내에 있었다. 소방 당국은 "사망자는 없고, 주민 한 명이 부상했다"며 "정확한 붕괴 원인은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이 건물 1~2층에 있는 식당에서는 평일 점심때 150여명씩 식사를 했다고 한다. 주말이 아니었다면, 대형 참사가 날 뻔했다.

목격자에 따르면 건물은 순식간에 기우뚱하더니 그대로 내려앉았다. 부상한 건물 주민 이옥선(68)씨는 "1층쯤에서 '뚜둑'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진동이 느껴졌고 갑자기 아래로 곤두박질쳤다"고 했다. 이씨는 "정신을 차려보니 잔해 더미에 깔려 있었다"고 말했다.

무너진 건물은 1966년에 지은 벽돌·시멘트 건물이다. 10년 전 도시환경정비사업(재개발) 구역으로 지정됐다. 용산구청 관계자는 "사고 전까지 위험 시설물로 관리하진 않았다"며 "전문가와 주변 건물들에 대해 정밀 안전 진단을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건물주 고모(여·64)씨는 남편과 함께 3층에 살고 있었고, 4층엔 부상당한 이씨 부부가 거주했다. 1층에 있는 40석 규모의 칼국수 가게는 평일 점심에 인근 회사원 100여명이 줄 서서 먹을 정도로 소문난 맛집이었다고 한다. 1~2층을 모두 쓰는 백반식당 역시 인근 건설 현장 인부 80여명이 점심을 해결하던 곳이었다. 백반식당 주인 정모(31)씨는 "평일이었으면 대형 참사로 이어질 뻔했다"며 "하늘이 도왔다"고 했다.

사고 위치 지도

주민들은 "인근 아파트 공사가 시작된 지 반년이 지난 작년 여름부터 붕괴 조짐이 보였다"고 했다. 기존 건물을 부술 때 발파 작업을, 지반 공사 때 대규모 굴착 작업 등을 했다. 이때 충격으로 건물이 흔들리거나 균열이 생겼다는 것이다. 붕괴 건물 남쪽 30여m 떨어진 곳엔 2016년 10월부터 1140가구 규모 아파트 건물 5동과 업무용 건물 3채를 짓는 공사가 진행 중이다. 건설사 관계자는 "지반 공사는 6개월 전에 마쳤고 현재 건물을 올리는 중"이라고 했다. 10차선 도로 맞은편에는 2014년 6월부터 2017년 7월까지 650가구 규모의 아파트가 지어졌고, 이 아파트에서 북쪽 350여m 떨어진 곳엔 2013년 11월부터 2017년 5월까지 782가구의 아파트 공사가 있었다. 세 아파트 모두 사고 지점과 200m 안쪽으로 인접해 있다.

정씨는 지난 5월 구청에 제보하기 위해 건물 외벽이 튀어나오고 내부 인테리어 마감재가 벽에서 뜬 모습을 사진 찍어 놓기도 했다. 주민 박모(59)씨는 "화장실 외벽이 부풀어 오르고 장판이 들리는 등 조짐이 보여 구청에 신고했다"며 "지난 5월 10일에 구청 공무원이 와서 현장을 봤는데도 위험 시설물로 관리 안 했다는 게 황당하다"고 말했다. 구청 관계자는 "신고가 됐었는지 확인해 보겠다"고 했다.

3일 낮 12시 35분쯤 서울 용산구 한강로2가의 4층짜리 상가 건물(왼쪽 아래)이 ‘콰과광’ 굉음과 함께 순식간에 완전히 붕괴했다. 소방대원들이 폐허가 된 사고 현장의 잔해를 뒤지며 수색하고 있다. 이날 사고로 4층에 있던 거주민 1명이 부상했으며, 사망자는 없었다. 1966년 지어진 이 건물 1~2층은 음식점으로, 3~4층은 주거 공간으로 쓰였다. 사고 당시 거주자 4명 중 3명은 외출 중이었고, 휴일을 맞은 음식점이 문을 닫아 대형 참사를 피했다. 부상한 거주민은 “1층쯤에서 ‘뚜둑’ 소리와 함께 건물이 흔들렸고, 갑자기 아래로 곤두박질쳤다”고 했다.
‘삼풍’처럼 무너진 용산 4층 건물… ‘일요 휴점’ 덕에 참사 피했다 - 3일 낮 12시 35분쯤 서울 용산구 한강로2가의 4층짜리 상가 건물(아래)이 ‘콰과광’ 굉음과 함께 순식간에 완전히 붕괴했다. 소방대원들이 폐허가 된 사고 현장의 잔해를 뒤지며 수색하고 있다. 이날 사고로 4층에 있던 거주민 1명이 부상했으며, 사망자는 없었다. 1966년 지어진 이 건물 1~2층은 음식점으로, 3~4층은 주거 공간으로 쓰였다. 사고 당시 거주자 4명 중 3명은 외출 중이었고, 휴일을 맞은 음식점이 문을 닫아 대형 참사를 피했다. 부상한 거주민은 “1층쯤에서 ‘뚜둑’ 소리와 함께 건물이 흔들렸고, 갑자기 아래로 곤두박질쳤다”고 했다. /서울시 소방재난본부

1층 칼국수 가게 주인 이모(여·59)씨는 붕괴 전날인 2일 오후 건물이 갑자기 기울었다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이씨는 "퇴근하려고 문을 잠그는데, 그동안 잘 닫히던 문과 문틀 사이에 큰 틈이 벌어져 한 남성에게 부탁해 간신히 해결했다"고 말했다. 건물주 고씨는 "올해 5월 세입자들이 '건물에 금이 많이 생긴다'고 얘기해서 알게 됐다"고 말했다. 붕괴 건물 인근의 다른 식당 주인은 "작년부터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굴착 작업 등을 할 때 건물이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며 "우리 건물에도 금이 가 아파트 건설사와 구청에 항의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김성호 한국건축구조기술사회 부회장은 "건물 철거와 지반 공사가 노후한 시멘트 블록 건물에 충격을 주면, 붕괴 위험이 커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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