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높은 곳에 올라가면 건물 옥상부터 살펴보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텅 빈 옥상에 태양광 발전을 하면 건물주와 우리 사회에 모두 이익이 되는데, 그냥 놀려두는 게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박일준(53) 동서발전 사장은 지난달 31일 울산 본사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얼마 전 서울 코엑스 옥상에도 태양광 발전 설비를 짓자고 제안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박 사장은 요즘 밤잠도 설친다고 한다. 그는 "어제 울산에 비가 많이 와서 혹시나 발전소 냉각수에 이물질이 들어가 사고는 나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잠을 설쳤다"며 "공기업이긴 하지만 2400명의 직원을 거느린 CEO(최고경영자)가 되고 보니 어깨가 무겁다"고 했다.
박일준 동서발전 사장이 지난달 31일 경북 경주시 경주풍력단지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박 사장 뒤편에 보이는 풍력발전기는 날개 길이 45m, 타워 높이 80m에 이른다. 동서발전의 1호 풍력발전 사업인 경주풍력단지에는 총 16기의 발전기가 운영되고 있다. /동서발전
박 사장은 취임 100여일 만에 '30년 공무원' 태를 벗고 비즈니스맨의 면모를 보이고 있었다. 박 사장은 1987년 행시 31회로 공직에 입문, 산업통상자원부 산업정책실장·기획조정실장,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소프트웨어정책관 등을 지냈다. 작년 11월 산업부에서 퇴직해 올 2월 동서발전 사장에 취임했다. 동서발전은 한국전력의 자회사로, 우리나라 전체 전력의 9.5%를 생산한다.
정통부에서 IT 정책을 수립해본 경험도 사업에 활용하고 있다. 인터뷰한 날도 오전에 블록체인(분산 저장) 분야의 국내 권위자를 만났다고 했다. 데이터를 수많은 컴퓨터에 분산 저장하는 블록체인은 해킹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발전 분야에도 활용 가능성이 크다. 그는 "동서발전이 현재 사용하는 IT 시스템만 120개에 이른다"며 "수많은 부품에 센서를 부착해 고장을 예방하고 발전 효율을 높이고 있는데, 블록체인을 활용하면 더 안전하고 효율적인 IT 발전 시스템을 만들 수 있다"고 했다.
전력 소비자인 기업들을 상대로 한 신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전기 사용 패턴을 분석해서 효율적인 전력 소비 시스템을 구축하는 사업이다. 박 사장은 "이런 시스템을 구축하려면 돈이 많이 들기 때문에 부담스러워 하는 중소기업 사장님도 많다"며 "그럴 땐 우리가 초기 설비 투자를 해주고 아낀 전기료를 나눠 갖는다"고 말했다. 그는 "태양광 발전 건설 여력이 없는 소규모 사업장에는 우리가 투자하는 대신 이익을 공유하는 사업 방식도 제안하고 있다"고 했다.
공기업인 동서발전은 신재생에너지 발전 설비를 늘리는 게 가장 큰 과제다. 문재인 정부가 2030년까지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20%까지 높이는 '신재생에너지 3020'을 국정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 사장은 "동서발전은 정부 목표치보다 높은 25%를 태양광과 풍력 등 신재생에서 얻으려 한다"며 "이를 위해 2030년까지 총 15조원을 투자해 신재생 발전 설비를 늘려갈 것"이라고 했다. 동서발전은 2017년 말 기준 424㎿의 신재생 설비를 운영 중인데, 2030년까진 5.06GW로 10배 이상 확대할 계획이다.
신재생 발전 설비를 늘리려면 주민들의 동의가 필수적이지만, 국토가 좁은 우리나라에선 쉽지 않은 일이다. 주민 반대를 극복하기 위해 동서발전은 '이익공유형 주민 참여' 모델을 도입했다. 주민들이 지분 투자에 참여할 경우 연(年) 20%의 수익을 가져갈 수 있게 하는 방식이다. 동서발전이 지난 4월 상생업무 협약식을 가진 철원 두루미 태양광 발전소는 이런 모델로는 국내 최초다. 박 사장은 "이익공유형 모델이 주민 동의를 얻는 데 효과를 내고 있다"며 "철원 두루미 태양광 발전소 상생업무 협약식 땐 옆 마을 주민들이 '왜 우리 마을에는 안 해주느냐'고 항의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물론 아직 갈 길은 멀다. 산지가 많은 우리 국토 환경에선 일조량이나 바람의 세기 등이 신재생 발전에 적합한 곳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박 사장은 "어려운 여건인 건 맞지만, 화석에너지 대신 신재생에너지로 전환하는 건 지구온난화 등을 감안할 때 피할 수 없는 일"이라며 "정부가 신재생에너지에 최우선순위를 두는 지금이 아니면 정말 안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