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8.06.04 03:06

작년에만 한국서 42조원 수입한 중국, 삼성·SK하이닉스 조사 착수

중국 정부가 삼성전자SK하이닉스, 미국 마이크론 등 반도체 3사를 상대로 반독점 위반 조사에 착수하면서 국내 반도체 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지난달 31일 중국 반독점 당국 조사관들이 중국 현지 사무실에 갑자기 들이닥쳐 각종 문서와 컴퓨터를 뒤졌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삼성, SK 등 국내 업체들은 주말 내내 대응책을 마련하느라 분주했다. 국내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중국 당국 조사를 받는 상황에서 공식 입장을 내기 어렵다"면서 "일단 조사에 최대한 협조하겠다"고 말했다.

조사 대상이 된 반도체 3사는 전 세계 D램과 낸드플래시 시장의 90%, 50% 이상을 각각 차지하고 있다. 작년부터 시작된 반도체 수퍼 호황에 힘입어 사상 최고 실적을 내고 있지만 전 세계 반도체 수요(需要) 업체들로부터 가격 인하 압박을 받고 있다. 지난 4월에는 미국 대형 로펌 하겐스버먼이 이 3사를 대상으로 캘리포니아 북부 지방법원에 D램 가격 담합 혐의로 집단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중국 현지 매체들은 "중국에서 가격 담합 의혹이 확정되면 3사에 부과되는 과징금 규모가 최대 8조6000억원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中 업체들, 메모리 가격 인상에 불만

세계 최대 반도체 소비국인 중국은 작년 하반기부터 한국 반도체 업체를 상대로 가격 인하 압박을 지속해왔다. 작년 말 중국 스마트폰·PC 제조사들은 중국 경제정책 총괄 부서인 국가발전개혁위원회(발개위)에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계속 오르는 데다 공급도 원활하지 않다'며 삼성전자를 제소했다. 이어 발개위는 지난 2월 삼성전자에 '가격 인상을 자제하라'고 요구했다. 갈등이 지속되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달 부품 분야 사장단과 함께 중국을 방문해 화웨이·샤오미·BBK 등 현지 스마트폰 업체 최고경영자들을 만나기도 했다.

시진핑의 ‘반도체 굴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4월 중국 후베이성 우한에 있는 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YMTC) 낸드플래시 생산 라인을 둘러보고 있다. 올해 말 완공되는 이 공장은 32단 3차원(3D) 낸드플래시 제품을 생산한다.
시진핑의 ‘반도체 굴기’ -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4월 중국 후베이성 우한에 있는 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YMTC) 낸드플래시 생산 라인을 둘러보고 있다. 올해 말 완공되는 이 공장은 32단 3차원(3D) 낸드플래시 제품을 생산한다. /YMTC

중국은 세계 반도체 수요의 60%가량을 차지하는 최대 시장으로 작년 한국 반도체의 중국 수출액만 42조원이 넘는다. 중국 기업의 불만은 주요 반도체 기업이 막강한 시장 독점력을 활용해 너무 많은 돈을 번다는 것이다. 실제로 삼성전자(반도체 부문)와 하이닉스의 1분기 영업이익률은 50%에 육박하는 반면 화웨이·샤오미와 같은 중국 대표 스마트폰 업체들의 영업이익률은 9~10%에 불과하다. 게다가 D램은 제조사가 삼성전자·하이닉스·마이크론 등 사실상 세 곳밖에 없어 반도체를 조(兆) 단위로 구매하는 중국 제조사들이 가격 협상에서 전혀 주도권을 행사하지 못한다. 이런 시장 여건에서 현재 D램 반도체 가격은 2016년 6월 대비 200%나 폭등했다. 이에 대해 국내 반도체 업체 관계자는 "반도체 가격 인상은 스마트폰, 컴퓨터뿐만 아니라 인공지능(AI), 클라우드(대용량 서버) 등 새로운 수요가 늘어나면서 공급이 모자라는 것이 주요 원인"이라고 말했다.

"중국, 자국 반도체 업체 육성 의도"

미국 대형 로펌의 담합 소송에 이어 중국 당국까지 반도체 독점 여부 조사에 나서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업체들은 바짝 긴장하고 있다. 독과점 조사는 실제로 3사가 가격 담합을 했는지 여부 못지않게 경제 외적 변수가 크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중국 당국은 자국 시장에서 막대한 수익을 올리는 기업에 대해 반독점법 위반을 이유로 강력한 제재를 가하고 있다. 대표적 사례가 퀄컴이다. 중국은 지난 2015년 퀄컴에 반독점법 위반 혐의로 과징금 60억위안(약 1조원)을 부과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당시 하이닉스)는 지난 2004년 일본 엘피다, 독일 인피니온과 함께 미국에서 반도체 가격 담합 혐의로 1조원에 달하는 과징금을 물고 임직원 16명이 징역형까지 받은 사례가 있다. 소비자 집단소송도 제기돼 반도체 업체들이 총 3억달러(약 3200억원)의 민사 배상금도 지불했다. 공교롭게도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는 당시에도 40%대의 영업이익률을 기록한 반면 휼렛패커드(HP) 등 미국의 완성품 제조사들은 반도체 가격 상승과 판매 부진으로 저조한 실적을 냈다.

반도체 업계는 반도체 3사에 대한 중국의 규제에 중국 완성품 업체의 요구를 들어주는 것뿐 아니라 자국 반도체 기업을 육성하려는 의도도 있다고 본다. 칭화유니그룹 산하 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YMTC)를 비롯해 푸젠진화·허페이창신 등 중국 반도체 3사는 올 하반기 메모리 반도체 시험 생산을 하고 내년부터 본격 양산에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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