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퍼해도 괜찮아, 의사에겐 냉정보다 열정이지

의사의 감정｜다니엘 오프리 지음｜강명신 옮김｜페가수스｜326쪽｜1만8000원

'현대 의학의 아버지'로 여겨지는 윌리엄 오슬러 경은 1889년 5월 1일 미국 펜실베이니아 의과대학을 졸업하는 학생들에게 '평정심'이라는 개념을 주제로 축사를 했다. 그는 새내기 의사들에게 '일정 수준의 무감각은 장점일 뿐만 아니라 냉정한 판단을 위한 필수 요건'이라고 강조했다. 의사들이 냉정하다는 고정관념은 그가 강조한 '평정심'에서 나왔다.

의사에게 평정심은 미덕이다. 환자와 감정적 거리를 유지하지 못하면 자칫 객관성을 잃고 그릇된 판단을 내릴 수도 있고, 최악일 때는 환자의 생명까지 위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사의 감정'을 쓴 다니엘 오프리는 이 오랜 불문율에 의문을 제기한다. 오프리는 내과 의사이자 뉴욕대 의과대학 교수로 뉴욕 벨뷰 병원에서 20년 이상 근무하며 감정이 의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연구와 저술을 이어왔다. "의사들, 특히 수련받는 의사들은 감정이 '합리적' 의사 결정에 크게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감정에 대해 잘 알고, 감정이 동요할 때 잘 조율하고, 환자와 관계를 맺을 때 어떻게 감정을 접목할 수 있을지 이해함으로써 환자와 더 안정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 수 있다."

그녀는 환자와 감정적 거리를 두기보다 환자와 공감하는 의사가 더 적절한 치료를 한다는 연구 결과가 쏟아져 나오지만 정작 현장 의사들은 감정의 스위치를 꺼놓고 있다고 지적한다. 하버드 의대 교수 제롬 그루프먼의 저서 '의사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의 이 구절이 저자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대다수 의료 실수는 생각을 잘못하는 바람에 발생하는데, 그중 일부는 감정이 그 원인이다. 그러나 의사 대부분은 자신에게 그런 감정이 있었는지조차 모른다."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의대생들은 수련받는 과정에서 공감 능력을 점점 상실한다. 수련 과정의 무질서와 피로, 혹독한 도제식 교육, 실수하면 안 된다는 압박감, 그리고 환자를 희화하는 병원 속어의 일상화 등이 이유다. 의사들의 노동 강도, 직업적 환멸, 의료 소송까지 광대한 주제를 아우르는 이 책의 메시지는 간명하다. 의사가 환자의 슬픔에 공감하고 그 감정을 위한 시간과 공간을 부여받을 때, 그것이 환자에게 흘러드는 연료가 된다는 것이다.

그는 가고 나는 남아서｜김원석·남궁인·오흥권 외｜청년의사｜308쪽｜1만5000원

이제 공감력 넘치는 의사들 이야기를 만나볼 차례다. '그는 가고 나는 남아서'는 '의료계의 신춘문예'라는 한미수필문학상 수상작 40편을 엮은 책. 수록작 중 하나인 외과 의사 김창우의 '거즈 유감'은 전공의 시절 환자 배 안에 거즈를 그대로 두고 꿰매버린 치명적 실수에 대한 회고다. 실수를 알아채고 몇 초간 수많은 생각이 오갔지만 그는 단 한마디만 입에 담았다. "정말 죄송합니다." 교과서엔 없지만 의사들이 수련 과정에서 어깨너머로 체득하는 일종의 지침 가운데 '절대 환자나 보호자에게 사과하지 마라'는 내용이 있다. 인간적 미안함을 표현했을 뿐인데 환자 측에선 의료진이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느냐는 취지의 주장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최선을 다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당면 과제이지만 나는 그 출발이 올바른 사과라고 확신했다"고 썼다. 아이가 입원해 병실을 지키고 있을 때 마음 졸였던 경험을 통해 공감은 의사에게 가장 중요한 요소임을 믿게 되었기 때문이다. 환자의 아픔에 전이되는 걸 두려워하면서도 결국은 교감이 답이라고 외치는 의사들 이야기를 읽고 있으면,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곧고 인정 넘치는 의사가 실제로 우리 사회에 많다는 사실에 병원 가는 일이 기꺼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