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8.06.01 23:42

도심 속 살아가는 공간에 대해 역사·정치 등으로 풀어 대안 모색

'어디서 살 것인가'
어디서 살 것인가|유현준 지음|을유문화사|380쪽|1만6000원

차분하고 친절한 저자이지만 딱 한군데서 그의 분노를 엿볼 수 있다. 읽다 보면 딱 그 지점에서 덩달아 화가 난다. 27쪽. 교도소와 학교가 나란히 나온 사진이다. 둘 다 운동장 하나에 4~5층짜리 건물이다. 담장이 있다는 것과 담장을 넘으면 벌을 받는다는 것까지 똑같다. 우리는 왜 초·중·고교의 12년을 교도소와 같은 건물에서 보낸 걸까? 그것도 모자라 왜 우리의 아이들까지 같은 건물에서 또다시 12년을 보내야 하는 걸까?

'어디서 살 것인가?'라는 물음은 어느 동네나 무슨 아파트에서 살아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자는 게 아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 그중에서도 도시를 앞으로 어떻게 바꿔나갈지를 묻는 것이다. 건축학과 교수이자 건축가인 저자는 세계 역사·정치·사회·문화를 건축과 공간으로 풀어내면서 답을 찾으려고 한다. 이를테면 건축과 권력의 관계를 얘기하고자 진시황의 만리장성과 파라오의 피라미드를 비교하면서 9·11 테러에서 공격당한 세계무역센터 빌딩까지 이야기를 끌어낸다. 과시욕 많은 건축주가 가분수 형태의 건물을 선호한다는 것을 사람의 헤어스타일에 빗대 설명하기도 한다.

학교(위 사진)와 교도소는 닮은 꼴이다.
학교(위 사진)와 교도소는 닮은 꼴이다. 담을 넘으면 벌받는 것까지 똑같다. /을유문화사
사옥(社屋)이나 편의점, 1인 가구의 주거, 학교 등 도시 생활자들의 최대 관심사를 화두로 삼아 도시의 건축과 공간을 점검한다. 대안도 제시한다. 툇마루 역할을 할 수 있는 발코니를 집집마다 짓기 힘들다면 개방형 계단실이라도 만들자는 주장이나 고층 건물과 저층 건물을 공생시켜 자연발생적인 골목길을 보존하는 방안 등은 꽤 그럴듯하다.

상냥하고 수다스러운 책이지만 가끔 정색하고 목소리를 높인다. 2014년 서울시장이 뉴욕의 하이라인 고가공원을 방문한 뒤 '서울로 7017'을 추진했고, 2016년 뉴욕의 로라인 지하공원을 방문한 뒤 을지로와 세종로의 지하공원을 추진하고 있는 사실을 지적한다. 언제쯤 '선진국 답사 후 추진'을 벗어날 수 있느냐는 것. 하지만 이마저도 변화 자체를 거부하는 학교 건물보다는 훨씬 낫다. 학교 건물을 바꿔보려다 실패한 저자의 경험을 접하면 한국의 도시에서 계속 살아도 될지 회의가 들 정도다. 양계장에서 독수리는 나올 수 없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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