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 끼니 최선을 다해 먹다 보니 여기까지 온 것이다. 국내 최장수 음식 웹툰 '오무라이스 잼잼'이 최근 시즌10 연재를 시작했다. "'미스터 초밥왕' '요리왕 비룡' 같은 일본 음식 만화는 일상에선 접할 길 없는 천하 진미 위주다. 그리고 자꾸만 등장인물이 요리로 대결을 한다. 그림의 떡이 아니면서, 싸우지 않는 만화는 없을까?"
그리하여 만화가 조경규(44)씨가 내놓은 '오무라이스 잼잼'에 9년째 독자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토스트·다코야키·부대찌개 같은 친근한 음식에서 소재를 길어 올린 이 '일상툰'은 그가 고교 시절 가장 좋아한 최인호의 연작소설 '가족'과 닮아 있다. 음식 소개에 그치지 않고 식구들 입가에서 밥알처럼 반짝이는 작은 깨달음의 순간이 담겼기 때문. 조씨가 가장 애틋하게 여기는 '삼불점(三不粘)' 편처럼, 치아·접시·수저(三)에도 붙지 않는(不) 떡처럼 찰진(粘) 중국 후식 삼불점을 통해 '아빠와 안 떨어지려고' 유치원 등원마저 거부하던 딸과의 기억을 조리하는 식. "제목도 마찬가지다. 계란으로 살포시 덮인 밥에서 포근한 가족의 모습이 떠오르지 않나?"
웹툰‘오무라이스 잼잼’속 각종 음식 그림을 배경으로, 조경규가 만화책을 햄버거처럼 들어 보이고 있다. 그는“매일 먹을 수 있는 음식을 꼽으라면 단연 햄버거”라고 했다. /장련성 객원기자
그러나 그가 처음 떠올린 것은 공룡이었다. 먹을 순 없었으나 '쥬라기 공원'에 매료된 고교생 조경규는 공룡을 부활케 할 과학자를 꿈꾸며 인하대 생명공학과에 진학한다. 공부는 생각과 달랐다. "마침 아버지가 컴퓨터를 사주셨다. 컴퓨터를 만지작거리다 뭔가를 그리기 시작했다. 독학으로 웹디자인을 익혔다." 대학을 관두고 1년간 서울 강남의 웹디자인 회사를 다녔다. "처음엔 탐탁지 않게 여기던 부모님도 '이왕 할 거면 제대로 하라'고 하셨다." 그는 독립운동가 조만식 선생의 친손자다.
혈혈단신 1999년 미국 뉴욕으로 건너가 미술 학교 프랫인스티튜트에 다녔고, 2002년 귀국해 프리랜서 생활을 시작했다. 다소 과격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각종 잡지 삽화뿐 아니라 황신혜밴드·클래지콰이 등 유명 가수의 홈페이지나 공연 포스터·앨범 표지 등을 작업했다. 2007년 만화 잡지 팝툰에서 연재 제의가 왔다. "내 일러스트를 본 편집자가 음식 만화를 주문했다. 어릴 적 외식(外食)은 늘 중국집에서 했으니 중화요리라면 일가견이 있지 않나 싶었다." 고교 식도락 동아리 회원들이 중화요리 맛집을 순례하는 그의 첫 음식 만화 '차이니즈 봉봉클럽'이 탄생했다. 2008년부터 3년간 중국 베이징에서 디자이너로 일한 경험을 살려 '북경 편'을 내기도 했다. "매일 식당 한 군데씩 다녔다. 중국에서 번 돈은 중국에서 다 썼다." 최근 웹툰을 원작으로 한 웹드라마 방영이 시작됐고, 출간 10주년 개정판도 나왔다. "올 하반기 연재를 재개할 계획이다. 광저우 편이 될 것 같다."
잡지가 폐간하면서, 웹툰으로 눈길이 돌아갔다. 2010년 '오무라이스 잼잼'이 세상에 나왔다. 과자 '새우깡'부터 아이스크림 '바밤바'까지 만화 속 모든 상표는 실명(實名) 공개. "온전히 내 취향이니 숨길 이유가 없다." 가끔 고맙다며 식품 회사에서 선물을 보내준다. "시즌1에 '샘표' 깻잎을 넣은 적이 있는데, 이 회사에서 양념·식용유 같은 걸 한 박스 집으로 배달해줬다." 아웃백·파리바게뜨 등 요식업계에서 협업 의뢰도 잦다. "메인 메뉴만 수백 개 다뤘다. 하지만 오이는 안 그릴 것이다. 향이 너무 싫다."
그는 분량을 모두 확보한 뒤에야 연재를 시작하고, 시즌제로 1년에 한 번꼴로 끊어서 한다. 웹툰이지만 늘 스케치북에 연필로 그린 뒤 스캔한다. 그러니 그의 만화는 24시간 프랜차이즈라기보다, 그날 재료만큼만 요리하는 동네 식당이라 할 수 있다. "내 만화가 계란프라이였으면 좋겠다. 대단한 건 아니어도 빵에도 밥에도 다 어울리니까. 질리지도 않고, 잊을 만하면 생각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