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8.06.05 00:06

춘천 '제따와나 선원'의 일묵 스님
"불교의 가르침은 명품인데… 고루한 이미지를 벗고 싶었다"

한국 사찰은 모두 한옥의 형태를 띠고 있다. 간혹 사찰 내부에 한옥 아닌 건물이 있기도 하지만, 법당을 비롯한 주요 건물은 어김없이 한옥이다. 지난 4월 강원 춘천시 남면으로 옮긴 조계종 '제따와나 선원'은 그런 통념을 깼다. 벽돌과 콘크리트로 지은 이 절은 복원된 고대 유적지 같은 외관으로 건축계와 불교계에서 동시에 화제를 낳고 있다.

일주문 앞에 서면 건물 외벽과 바닥을 붉은 벽돌 40만 장이 뒤덮은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건물 1층에 있는 회랑을 따라 늘어선 열주가 고대 신전처럼 장엄한 분위기다. 이 절을 설계한 부부 건축가 노은주(49)·임형남(57) 가온건축 소장은 "신라·고려·조선시대를 거치며 절 건축 양식이 계속 변했듯, 과거 형태를 고집하지 않고 지었다"고 했다.

이 건물에는 '한국 불교를 현대화하겠다'는 선원장 일묵(53) 스님 의지가 담겼다. 그는 "불교의 가르침은 명품인데 겉모습은 너무 낡았다"며 "고루한 이미지를 벗는 사찰을 짓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1996년 성철 스님의 제자인 원택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당시 서울대 한 불교 동아리에서 2년 동안 8명이 잇따라 승려의 길을 택해 화제가 됐고, 수학과 박사과정에 있었던 일묵 스님이 첫 주자였다.

선원 이름 제따와나는 2600년 전 석가모니가 가장 오래 머물렀다는 인도 기원정사(祇園精舍)의 인도 고대 언어식 발음이다. 초기 불교가 전하는 가르침을 갈구한다는 제따와나 건물도 기원정사에서 착안했다. 기원정사는 현재 붉은 벽돌로 된 기단만 남아 있으며, 거기서 모티브를 얻어 벽돌을 주재료로 썼다. 벽돌로 지어진 인도의 불교 유적 날란다 대학도 영향을 줬다.

겉모습은 파격적이지만 건물 배치는 전통 사찰 형식을 따랐다. 이 절은 높이가 4m씩 차이 나는 세 개의 단으로 나뉘어 있다. 일주문을 지나면 나오는 첫째 단에는 종무소와 공양간, 신도들이 수행하러 와서 머무르는 숙소 등이 있고, 둘째 단에 요사채(스님 거처), 셋째 단에 법당이 있다. 단을 오를수록 속세에서 멀어지고 부처에 가까워지는 점층적 구조로, 기존 절의 구조와 같다. 법당까지 올라가는 길은 직선이 아니라 일부러 한 번 꺾었는데, 통상 절 내부 길이 구불구불한 점을 본떴다.

건물 안팎은 단순하다. 기둥과 몸체 외에 다른 장식 없이 네모반듯하다. 노 소장은 "뺄 수 있는 건 다 뺐다"고 했다. "금속 지붕같이 요즘 벽돌 건물에 흔히 들어가는 디테일을 넣을까 하다 다 없앴어요. 초기 불교에 걸맞은 원시적 느낌을 살리고, '근본으로 돌아간다'는 의미도 담았죠."

고정관념을 바꾸자니 쉽지 않았다. 춘천시는 '절로 허가받고 다른 용도로 쓰려는 것 아니냐'며 심의에서 두 번 퇴짜를 놨다. 공무원을 설득하니 주민들이 반기를 들었다. '서대문형무소와 비슷하다' '납골당으로 쓰려고 저렇게 지었다'는 소문이 퍼졌다. 건축가와 건축주는 동요하지 않았다. "다 흘러갈 일이죠. 이게 다 우리가 시대를 앞서나가다 보니 받는 오해라고 생각합니다."



조선일보 조선닷컴

시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