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8.06.07 18:19

하늘 밖 별 만큼 많은 사람이 그러해 왔지만, 나 또한 나이에 점점 반비례하여 적게 되는 말이 있다. 나를 세상에 어떻게 드러내고, 그래서 어떻든 멋지게 보일 수 있을까 하는 말. 나도 괜찮은 사람이라는 말. 이를 분명 누구에게라도 드러내고 싶은 말이다.

매일, 아내와 딸들과 아직 잘 먹고, 걷고, 자고, 말하는 것을 서로 보곤 한다. 가끔 친구나 친척들과 만나 아직 잘 먹는지 서로 보고. 또, 일에 얽혔던, 또 얽힌 사람들을 보고 또 보이기도 하고. 참 많이도 그랬다. 나는 잘 있다며. 이렇게 살아있다며.

지난달 말, 판교역 부근 금토천 개나리교를 지나 25년 전 직장에서 근무했거나 만났던 분들을 보며, 오래 지난 이야기와 새로운 이야기도 했다. 옛 동료도 함께 합류해 밥도 먹었다. 그 많은 사람 중 하나하나다.

태어나 최근까지 이링공저링공 하는 사이사이, 그 사이마다 오가는 사람들을 스쳐 지나곤 하다가, 그래, 나는 이들과 같은 한 사람일 뿐이구나 느껴보는 것이었다. 어제도 그랬듯 평범하게. 누구나 그렇듯, 또 비슷한 느낌을 말하며 쓰며 말이다. 비슷한 하루를 또 계속.

조선DB
그러다가, 문득, 꽃이나 길, 산, 하늘, 강 등을 찾아가곤 했다. 그 언저리에 서서 멋지게 우쭐거려 보는 것. ‘맞아, 나도 지구의 하나구나, 물체구나’ 하며 말해 보는 것. ‘그래, 맞아, 나는 이들 사람과 저 물체들과 함께 있구나.’ 하는, 허허, 이때마다 웃어보려는 괜한 우쭐함이라니.

이럴 즈음, 기분 좋을 때, ‘그렇구나’ 하며 나도 모르게 웃어보기도 하는데, 참 쓸데없이 웃는 얼굴을 드러내며, ‘난 참 건방지구나’ 하며 고개를 끄덕여 보기도 한다. 이럴 땐, 이런저런 엉뚱한 핑계라도 대보는 것이었다. 사람은 모두 다른 사람에게 건방지게 보이려는 본능이 있다고. 스스로 다른 것에 건방지게 굴어야 내가 힘을 내는 거라고.

어쩌면, 살아있는 것 자체가 어떤 우월한 감정을 지니게 하는 듯, 아니 가져야 하는 듯하다. 나는 과연 건방져서 즐거운가? 내가 멋지게 무엇인가를 이긴 것 같아 즐거운가? 나는 내 시간이 지나는 만큼, 그만큼 이겼다며, 끝내 즐겁다며, 건방진 소리를 시건방지게도 내고 있어야 하는가?

지구 모래만큼 많은 사람 중, 어떤 사람도 혹시 그렇게 웃다가 사라진 것일까? 진정, 나는 건방지게 웃으며, 아침마다 살다가 더 건방지게 밤마다 웃으며 사라질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다시 사랑하는 아내와 딸들과 그리고 아는 사람들을 만나기도 하고, 그 사이마다 스치는 사람들과 물체들과 이러니저러니 이야기 나누다 잊힐 것인가?

허, 나는 수많은 답의 질문을 끝까지 할 것인가? 마음에 드는 답을 할 때까지 건방지게 질문만 할 것인가? 하하, 그럴 거다. 그렇다며, 더 건방지게 구름을 볼 거다. 허허, 뭐, 흐르는 물도 볼 거다. 아니, 사람이든 물건이든 비슷하게 볼 거다. 볼 수 없을 땐, 그냥 느낄 거다. 느끼지 못하면, 그때 가서 생각해 볼 거다.

이렇듯, 건방지게 웃을 땐, 나이란 참 꼴불견이다. 건방지다는 것과 웃는다는 것과 꼴불견과 나이와 나는 서로 관련도 없이, 서로 툭툭거리며 바라만 보는 것이었다. 다시, 어느 순간보다 나를 톡 건드리며 더 건방지게 웃어 본다. 물론 지금 속으로. 어떤 표정 없이.

조선일보 조선닷컴

시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