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가에 들어서는 작은 회사들, 사업성·효율성 대신 창의력 중시
독특한 디자인으로 건축상 받기도 "양적 성장 대신 인간적 가치 추구"
작지만 색다르게 지은 사옥들이 골목 곳곳에 들어서 동네 분위기를 바꾸고 있다. 사옥 용도의 작은 건물은 전용 공간을 극대화해 사업성과 효율성을 추구한 형태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최근 지어진 작은 사옥들은 무미건조한 건물들 사이에서 돋보이며 거리 분위기를 바꾼다.
이상대 스페이스연 대표는 3년 전 독특한 의뢰를 받았다. 사촌지간인 광고회사 대표와 의류회사 대표가 찾아와 '두 회사가 같이 사옥으로 쓸 건물을 지어달라'고 한 것이다. 사옥을 각각 지으려다 건물 하나를 단독으로 쓸 규모는 아니어서 두 회사가 공유하자는 아이디어를 냈다고 한다.
이렇게 지어진 서울 논현동 d'A 프로젝트는 작년 서울시건축상 최우수상을 받았다. 이 대표는 "기존 사옥들과 다르게 건물 외부와 내부, 위층과 아래층의 단절을 해소하는 데에서 새로운 건축 디자인을 찾았다"고 했다. 이를 위해 층마다 다양한 크기와 방향으로 발코니를 냈고, 위층 창문을 통해 아래층에 햇빛이 비치게 하는 등 건물 내부 공간을 수직적으로 연결했다. 두 회사 구성원이 친밀감과 동질감을 갖게끔 의도한 것이기도 하다. 하얗고 매끈한 인조석으로 마감된 외관은 연립주택들 사이에 있어 더 눈에 띈다.
서울 신당동 HWN 사옥은 회사 속성을 건물 외관에 담은 사례다. 동대문시장에서 청바지 도매업을 하는 이 회사는 '동대문 제품'에 대한 이미지에서 벗어나고, 사진 찍을 스튜디오를 마련하려고 사옥을 지었다. 건물은 세 가지 다른 방식으로 가공해 색깔과 질감이 다른 노출 콘크리트가 3단으로 얹혀 있는 모습이다. 건물을 설계한 부부 건축가 이소정·곽상준 OBBA 소장은 "같은 데님 재질을 어떻게 가공하느냐에 따라 다양한 청바지가 나오듯, 같은 콘크리트로 다양하게 표현했다"고 했다. 간결하고 절제된 디자인으로 도시에 녹아든 이 건물은 작년 서울시건축상 우수상을 받았다.
서울 연남동 철길 옆 주택가에 있는 잡지사 어라운드 사옥은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 모양이 달라져 행인들에게 보는 재미를 준다. 삼각 기둥 세 개를 비뚤게 쌓아올린 모양으로, 한쪽에선 보통 건물처럼 폭이 널찍해 보이지만 다른 방향에선 날카롭다. 어떤 각도에서 보면 종이처럼 얇은 구조물을 보는 듯한 착시도 일어나 길을 걷다 멈춰 서서 한동안 보게 된다. 이 건물은 젊은 건축가 윤한진·한승재·한양규 푸하하하프렌즈 소장이 설계했다. 외벽은 하얀 타일로 마감했다. 윤 소장은 "생김새는 어렵지만 사람들이 쉽게 받아들이게 하기 위해 쉬운 재료를 썼다"고 했다.
건축주들은 사옥을 짓는 이유로 임차료와 근무 환경을 든다. 올해 초 서울 논현동 사옥으로 옮긴 광고회사 아이파트너즈 문준호 대표는 "창업 멤버를 포함한 직원들이 근무 환경을 이유로 들며 빠져나간 뒤 사옥을 짓기로 했다"며 "오피스 빌딩에 입주해 있을 때 매년 임차료와 관리비가 몇억원씩 들었던 것도 영향을 줬다"고 했다. 건축가 이현호가 지은 이 사옥은 콘크리트 타워가 반으로 잘린 듯한 모양이고, 잘린 단면은 통유리로 이뤄졌다. 문 대표는 "남들과 다른 사옥은 창의적 생각이 나오는 배경이 될 것"이라고 했다.
작고 색다른 사옥이 곳곳에 생겨나는 것은 질적 성장을 추구하는 흐름이 건축에서 발현된 것이라고도 해석할 수 있다. 건축가 이상대는 "개발시대에 양적 성장을 중시하며 놓쳤던 인간적 가치를 추구하려는 시도"라고 말했다.